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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다이노’는 왜 잊혔을까 – 픽사가 던진 가장 원초적인 질문

by 신리뷰 2025. 5. 9.

굿 다이노같은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

 

‘굿 다이노’는 왜 잊혔을까 – 픽사가 던진 가장 원초적인 질문

 픽사 애니메이션 ‘굿 다이노(The Good Dinosaur)’는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나지 않는 픽사 영화’로 남아 있다. 2015년 개봉 당시, 같은 해 공개된 ‘인사이드 아웃’의 대성공에 가려졌고, 픽사답지 않은 전개라는 평가와 함께 흥행에서도 부진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지금, 이 작품은 다시 돌아볼 가치가 충분한, 픽사의 철학과 감정 서사를 가장 본질적인 방식으로 담아낸 저평가 명작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굿 다이노는 ‘공룡이 멸종하지 않았다면?’이라는 상상에서 시작되지만, 스토리는 상상력보다 감정과 생존, 관계와 성장이라는 원초적인 질문에 집중한다. 주인공 아르로는 겁 많고 연약한 공룡으로, 폭풍우에 휩쓸린 후 가족과 떨어지면서 홀로 집을 찾아가는 여정을 떠난다. 그리고 그 여정 속에서 소년 인간 스팟과 동행하게 되며, 언어 없이 마음을 나누는 특별한 우정을 쌓는다.

대사보다 자연, 말보다 감정

 굿 다이노는 픽사 작품 중에서도 가장 적은 대사와 가장 많은 침묵을 가진 영화다. 영화 속 많은 장면은 대화보다 풍경, 눈빛, 호흡으로 감정을 전달하며, 이로 인해 이야기의 흐름이 느리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바로 이 침묵이야말로 굿 다이노의 핵심이다.

 픽사는 이 작품을 통해 감정을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주인공 아르로가 두려움과 슬픔을 표현할 때, 구름이 몰려오고, 낙엽이 흔들리고, 물살이 거세진다. 자연이 인물의 감정을 대변하는 방식은 단순한 시각 효과를 넘어, 감정과 환경이 하나로 연결된 시네마적 표현으로 읽힌다.

상실, 생존, 그리고 ‘애니메이션답지 않은’ 어둠

 굿 다이노는 초반부터 주인공의 아버지를 잃게 하며 관객을 충격에 빠뜨린다. 이 장면은 픽사 특유의 ‘가족 상실’ 코드이지만, 굿 다이노는 그 슬픔을 정면으로 응시하게 만든다. 이후 아르로는 험한 자연을 홀로 지나고, 굶주림과 죽음의 위협, 야생 동물의 공격 등 픽사 애니메이션에서 보기 드문 원초적인 공포를 마주한다.

 이러한 전개는 어린 관객에게는 낯설고 무서울 수 있었고, 일부 부모는 "너무 어둡다"는 이유로 비판하기도 했다. 하지만 삶의 본질이 무엇인지, 내가 사랑하는 존재를 지키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를 다룬 이 영화는 사실 매우 ‘픽사다운’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왜 흥행에 실패했는가?

 굿 다이노는 제작 과정에서 감독 교체, 각본 수정, 제작 일정 연기 등 내부적으로 가장 험난한 제작 과정을 거친 픽사 작품 중 하나였다. 이는 결과적으로 완성도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고, 같은 해 ‘인사이드 아웃’이라는 걸출한 작품과의 비교가 피해 갈 수 없었다.

또한 자연 철학적 분위기, 느린 전개, 무언 대사 중심이라는 스타일은 흥행 공식에 익숙한 일반 관객에게 낯설게 느껴졌다. 유쾌하고 빠른 서사를 기대했던 가족 단위 관객에게 굿 다이노는 너무 정적이고 철학적이었다. 흥행은 실패했지만, 그 정적 속에서 픽사는 가장 내밀한 감정을 끌어내고 있었다.

조용히 되새김질되는 명작

 오늘날 굿 다이노는 디즈니+ 등 스트리밍 플랫폼을 통해 다시 발견되고 있다. 관객들은 비로소 “이렇게 섬세한 애니메이션이 왜 잊혔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고, 굿 다이노는 조용히, 그러나 확실히 다시 사랑받고 있다. 시각적 완성도, 감정 표현의 섬세함,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묵직한 질문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강하게 다가온다.

 픽사가 가장 조용히 만든 영화. 그리고 가장 용기 있게 만든 영화. 굿 다이노는 이제야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질문을 품고 있었다. 두려움은 약함이 아니라 성장의 시작이라는 메시지. 그 한 문장이, 굿 다이노가 왜 다시 기억되어야 하는지를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