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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차〉, 느와르가 가장 잔인하고 시끄러울 때

by 신리뷰 2025. 5. 17.

영화 야차 같은 느낌의 영화 한 장면

〈야차〉, 느와르가 가장 잔인하고 시끄러울 때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야차〉는 공개되자마자 국내외에서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빠르게 화제가 된 작품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단순한 스파이 액션이 아니다. 〈야차〉는 겉으로는 첩보 스릴러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그 내면은 철저히 느와르 장르의 문법을 따르고 있다. 정치와 권력, 국가와 범죄의 경계가 흐려진 도시에 놓인 인물들은 선과 악의 경계 없이 움직이며, 자신이 믿는 정의를 위해 기꺼이 악인이 되기를 선택한다.

 이 영화의 배경은 중국 선양, 즉 동북아시아 첩보의 교차점이자, 냉전 이후 여전히 흔들리는 국제 질서의 무대다. 국정원에서 블랙 요원 팀을 운영 중인 ‘야차’라는 코드명의 지휘관과, 중앙지검에서 파견된 검사 사이에서 벌어지는 첩보전은 스파이 장르의 외형을 지니지만, 실상은 국가라는 이름 아래 정당화된 폭력과 인간의 심연을 탐구하는 장르적 실험에 가깝다.

설경구의 ‘야차’, 느와르 캐릭터의 정수

 설경구가 연기한 야차는 느와르의 전통적 인물상에 가장 가까운 존재다. 법의 테두리 밖에서 움직이며, 자신만의 룰로 팀을 통솔하는 이 캐릭터는 냉혹함 속에 인간적인 고뇌를 지닌 모순적 인물이다. 그는 국가를 위해 싸운다고 말하지만, 동시에 누구도 믿지 않으며, 심지어 자신마저 의심한다. 느와르 장르에서 흔히 등장하는 ‘길을 잃은 영웅’이 바로 그에게 투영된다.

 그의 대사는 직설적이고 건조하며, 감정을 배제한 톤으로 일관한다. 하지만 이러한 무채색의 언어가 오히려 인물의 정서를 더 분명히 드러낸다. 특히 검찰 출신의 이상철(박해수 분)과의 긴장감 넘치는 관계는, 서로 다른 윤리 체계가 충돌하는 장면으로 작품 전체를 끌고 간다. 야차는 옳고 그름보다 생존과 임무의 완수를 우선시하는 캐릭터이며, 그런 면에서 그는 가장 한국적인 느와르 인물이라 할 수 있다.

느와르와 스파이 액션의 결합, 장르의 교차 실험

 〈야차〉는 액션 블록버스터처럼 보이지만, 그 내면은 훨씬 어둡고 냉소적이다. 느와르 장르의 전형인 도시 공간의 어둠, 윤리적 회색지대, 절대 선이 존재하지 않는 이야기 구조가 고스란히 유지된다. 특히 선양이라는 도시 설정은 매우 중요하다. 이곳은 중국과 북한, 한국의 정보기관이 얽히는 국제 첩보의 분기점이며, 영화는 이 공간을 통해 국경과 신념이 무너진 세계에서 인간이 어떻게 살아남는지를 보여준다.

 장면마다 삽입된 액션 시퀀스는 단순한 볼거리를 넘어서, 각 인물의 심리와 윤리적 위치를 시각화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총격, 추격, 침투 등 모든 장면은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이 아닌, ‘목적과 수단’이라는 질문으로 돌아온다. 관객은 누구를 응원해야 할지 끝까지 확신할 수 없고, 그 모호함이 바로 이 작품의 핵심 장르적 미덕이다.

글로벌 콘텐츠 전략 속의 한국형 느와르

 〈야차〉는 넷플릭스라는 글로벌 플랫폼을 타고 한국형 느와르가 어떻게 해외 시청자에게 통하는지를 보여준 사례다. 설경구와 박해수라는 이름값 있는 배우, 실존 국가 정보기관과 실감 나는 로케이션, 그리고 동북아시아의 첩보 정세를 현실적으로 반영한 설정은 한국이라는 특정 국가의 서사이면서 동시에 국제적 긴장감에 닿아 있다. 이는 기존의 한국형 느와르가 가지고 있던 내수 중심적 정서를 벗어나, 보다 보편적인 스릴과 도덕적 회색을 제시한 전략적 접근이다.

 또한 영화는 ‘국가’라는 절대 선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국가는 작전 실패를 은폐하고, 개인을 희생시키며, 때로는 적보다 더 비윤리적인 결정을 내린다. 그 안에서 인물들은 누가 적이고 누가 동료인지조차 판단할 수 없는 혼돈의 지대에서 끊임없이 움직이며, 이 무질서 속에서 느와르 장르 특유의 무게감이 탄생한다.

 결국 〈야차〉는 한국 영화계가 느와르 장르에서 구축해온 미학과 정서를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에 최적화된 방식으로 재구성한 사례다. 스파이 액션이라는 대중적 포장을 입고 있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극도로 비관적이고 회의적인 인간군상의 초상이 자리하고 있다. 그것이야말로 느와르가 가장 시끄럽고 잔인하게 작동하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