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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덤〉 시리즈, 생사초와 조선 한의학: 좀비는 어떻게 합리화되는가?

by 신리뷰 2025. 5. 16.

킹덤 시리즈의 조선 한의학은 소재에 적합했을까

〈킹덤〉 시리즈, 생사초와 조선 한의학: 좀비는 어떻게 합리화되는가?

 넷플릭스 〈킹덤〉 시리즈는 단순히 좀비의 공포에 의존하지 않는다. 그 중심에는 언제나 설득력 있는 설정과 세계관이 존재한다. 그중에서도 작품 세계 전체를 움직이는 핵심 장치가 바로 생사초다. 생사초는 죽은 이를 되살린다는 기이한 효능을 가진 가상의 식물이지만, 그 배경에는 조선 후기의 민간 약초 관념과 전통 의학이 깊이 스며 있다. 이 글에서는 생사초를 중심으로 〈킹덤〉 시리즈가 좀비라는 존재를 어떻게 ‘합리화’하고, 그것을 조선이라는 문화적 틀 안에 어떻게 자연스럽게 녹여냈는지를 살펴본다.

 〈킹덤〉에서 생사초는 북방의 설산 지대에서만 자생하는 신비로운 식물로, 죽은 자의 입에 달여 넣으면 다시 살아나게 된다고 전해진다. 실제로 이러한 설정은 고전 설화와 약초 전승에서 흔히 발견된다. 조선시대 『동의보감』, 『본초강목』, 『향약집성방』 같은 문헌에는 인삼, 백출, 지황, 맥문동 등 인간의 기를 보충하거나 장기를 회복시켜주는 약초들이 소개되며, 이들은 때로는 반생반사의 효능을 가진 신비한 존재로 묘사된다.

생사초의 근거, 실재하지 않는 식물의 설득력

 생사초는 실재하지 않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강한 설득력을 가진다. 한의학은 음양오행 이론과 장부경락설을 기반으로 한 조화의 의학이다. 따라서 기가 막히면 죽음에 이르고, 기혈이 통하면 다시 살아난다는 사고방식은 단순히 환상적 설정이 아닌, 당대의 의학 세계관 안에서 이해 가능하다. 생사초가 차가운 곳에서만 자란다는 설정 역시 음양론에서 ‘한(寒)의 기운’이 죽은 자와 더 가까운 상태를 만든다는 관념을 반영하고 있다.

 또한 조선 후기에는 병을 단순한 생물학적 문제로 보지 않고, 사회적 맥락이나 신의 노여움, 풍수지리까지 함께 해석하는 방식이 널리 퍼져 있었다. 생사초가 ‘귀신이 거쳐 간 식물’로도 여겨지는 설정은 민간신앙 속 부활이나 무당 주술과 유사한 맥락을 가진다. 이는 현대 의학 관점에서는 허구일 수 있지만, 조선의 역사적 상상력 안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였다.

죽음을 되돌리는 약, 생명에 대한 철학적 질문

 〈킹덤〉 시리즈에서 생사초는 단지 살리기 위한 약초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죽음을 부정하는 인간의 집착과 두려움이 만들어낸 재앙의 씨앗이다. 대비는 선왕을 좀비로 살려 두고 권력을 유지하며, 조학주는 이 식물을 병사로 활용해 자신의 군사적 영향력을 키우려 한다. 이처럼 생사초는 본래 의도와는 다르게 쓰이며, 결국 국가 전체를 위협하는 근원으로 자리 잡는다.

 이 지점에서 생사초는 단순한 가상의 식물을 넘어, 윤리적,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장치로 작동한다. 생명을 살리는 기술이 존재할 때, 우리는 그것을 언제, 어떻게, 누구에게 사용할 것인가. 이러한 질문은 단순히 드라마 속 설정이 아니라, 현대 사회의 유전자 편집, 생명 연장 기술과도 통한다. 〈킹덤〉은 조선 시대라는 틀 안에서 이 질문을 풀어낸다는 점에서 더욱 놀랍다.

민간요법, 무속, 그리고 좀비의 문화적 해석

 생사초가 사람을 되살리는 과정은 단순히 약을 먹이는 것이 아니다. 적절한 체온, 특정한 시간대, 신체의 어떤 부위에 접촉하느냐가 중요하게 작용한다. 이는 민간요법에서 ‘때’와 ‘장소’, ‘몸의 기운’에 따라 약효가 달라진다는 사고방식과 맞닿아 있다. 〈킹덤〉 시리즈는 이를 시청자가 납득할 수 있도록 정교하게 설계하며, 단순한 환상물이 아닌 민속학적 사실성을 더한다.

 무속 신앙과의 연결도 흥미롭다. 조선 후기에는 무당이 죽은 자의 영혼을 부르거나 생명력을 복원하는 의식을 행하곤 했다. 생사초의 기이한 효능은 이러한 샤머니즘적 세계관과 한의학의 경계에 있는 상상력으로 작동한다. 즉, 좀비는 과학으로 설명되지 않는 존재지만, 〈킹덤〉은 그것을 조선이라는 문화 안에서 타당하게 보이게 만드는 데 성공한다.

 결국 〈킹덤〉 시리즈에서 생사초는 단순한 소품이 아니다. 그것은 시대의 과학, 신념, 권력, 욕망이 교차하는 지점에 있는 장치이며, 좀비라는 장르적 결과물은 그 교차로에서 자연스럽게 탄생한다. 그래서 〈킹덤〉이 만들어낸 세계는 무서우면서도 설득력 있고, 비현실적이면서도 실제처럼 느껴진다. 생사초는 좀비를 합리화시킨 가장 치밀한 서사 장치이자, 조선의 지적 세계가 만들어낸 가장 낯설고 아름다운 창조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