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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어플레이〉, 사랑은 언제부터 승부가 되었을까?

by 신리뷰 2025. 5. 25.

사랑과 승부 사이

〈페어플레이〉, 사랑은 언제부터 승부가 되었을까?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페어플레이〉는 2023년 선댄스 영화제에서 첫 공개된 이후, 빠르게 입소문을 타며 글로벌 스트리밍 순위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이 작품이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히 ‘연애가 깨지는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랑과 커리어, 성별과 권력의 긴장이 하나의 관계 안에서 어떻게 부딪히고 무너지는지를 정밀하게 그려낸다. 이 영화는 우리가 익숙하게 소비해온 ‘사랑은 감정의 영역’이라는 생각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다.

 영화의 시작은 정열적이고 조화로운 커플의 모습이다. 에밀리와 루크는 직장 동료이자 비밀 연인으로, 서로에 대한 애정과 지지를 아낌없이 표현한다. 하지만 회사 내 인사 결정이 내려지는 순간, 그들의 관계는 미묘하게 흔들리기 시작한다. 승진의 주인공이 루크가 아니라 에밀리라는 사실은 단순한 직급 차이가 아니라, 감정의 균열을 촉발시키는 기점이 된다.

성장과 응원이 엇갈리는 순간

〈페어플레이〉는 연애 안에서의 ‘응원’이 언제부터 ‘질투’로 전환되는지를 날카롭게 포착한다. 루크는 처음에는 진심으로 에밀리의 성장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녀가 팀 내에서 권한을 행사하고, 상사에게 인정받는 모습을 보며 점차 내면의 불안을 숨기지 못한다. 그의 열등감은 애정이라는 포장 아래 점점 권력 다툼의 형태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특히 이 영화는 그 불안이 성별 고정관념과 무관하지 않음을 명확히 드러낸다. 같은 일을 해도 남성이 인정받기를 기대하는 사회적 시선, 그리고 그 시선을 내면화한 개인의 감정까지. 에밀리의 성공은 그녀 자신의 능력임에도, 루크는 이를 견디기 어렵다. 페어플레이는 겉보기에 평등한 관계가 실제로 얼마나 쉽게 비대칭으로 무너지는지를 보여준다.

사랑이라는 단어가 감정을 지켜주지 못할 때

 이 영화의 강점은, 인물들이 극단적으로 망가지지 않더라도 충분히 위태로운 감정을 드러낸다는 점에 있다. 루크는 결코 고전적 의미의 ‘악인’은 아니다. 하지만 자신의 불안을 외면한 채, 타인을 통해 존재감을 회복하려는 심리는 결국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폭력적으로 작동하게 된다. 에밀리 역시 무너지지 않지만, 점점 말수가 줄고, 자기 검열이 늘어난다. 그들의 대화는 점점 ‘설명’이 아닌 ‘방어’로 가득해진다.

〈페어플레이〉는 말한다. 사랑이라는 말이 아무리 강력해 보여도, 그 안에 권력 구조가 개입되는 순간, 감정은 더 이상 보호막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그 감정은 관계를 유지하려는 핑계로 기능하고, 상처를 합리화하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현대 사회에서 연애는 정말 평등한가?

 이 영화는 결국 연애라는 관계가 ‘사적’이라고 믿는 우리의 인식에 질문을 던진다. 직장이라는 공적 공간 안에서, 성별이 다르고, 커리어가 어긋나는 상황 속에서 감정은 과연 중립적인가? 〈페어플레이〉는 이 질문을 통해, 우리가 일상에서 얼마나 많은 감정과 권력을 뒤섞어 사용하는지를 정밀하게 들여다본다.

 에밀리와 루크의 결말은 단순한 이별이 아니다. 그것은 균등한 관계를 가장하고 있었던 무언가가 드러나는 과정이며, 동시에 '페어플레이'라는 말이 얼마나 상대적이고 위태로운지를 증명하는 장면이다. 누구도 완벽하게 평등할 수 없지만, 그것을 외면한 채 관계를 지속할 수는 없다. 이 영화가 내놓은 메시지는 명확하다. 사랑도 결국 권력이다.

 넷플릭스 〈페어플레이〉는 연애 심리극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실상은 가장 날카로운 사회 드라마에 가깝다. 연애, 커리어, 젠더 이슈를 정면으로 다루면서도, 감정의 복잡성과 인간의 나약함을 인정하는 시선이 인상적이다. 사랑은 감정이지만, 그 감정이 건강하게 유지되기 위해서는 구조 역시 건강해야 한다. 영화는 그 진실을, 가장 조용하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