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가족, 한국형 좀비 코미디는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좀비 장르는 언제나 진화 중이다. 특히 한국 영화계는 부산행을 기점으로 이 장르를 대중화했지만, 그 이후 등장한 작품들은 뚜렷한 개성과 실험으로 방향을 넓히고 있다. 그중에서도 기묘한 가족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좀비를 재해석한 작품이다. B급 코미디의 정서를 품고, 가족 드라마와 지방 소도시의 현실을 절묘하게 버무린 이 영화는 말 그대로 ‘기묘’하다. 그리고 그 기묘함이야말로 지금 우리가 좀비 장르에서 기대해볼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의 신호일지도 모른다.
기묘한 가족은 넷플릭스를 통해 스트리밍되면서 해외 관객에게도 은근한 인기를 얻었다. 영화는 강원도 산골 마을에 살고 있는 정체불명의 가족에게 한 좀비가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다. 그런데 이 가족은 보통의 대응을 하지 않는다. 도망치거나 소리 지르는 대신, 좀비를 가족 사업에 활용할 수는 없을지 생각하기 시작한다. 바로 기름값도 안 나오는 주유소에 '좀비 체험 관광'을 도입하려는 것이다.
장르의 비틀기, 좀비를 웃음 코드로 끌어내다
좀비 장르는 보통 공포나 생존 스릴러로 소비된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런 전제를 깨부순다. 좀비는 더 이상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경제적 자산이 된다. 영화 속 가족들은 생존보다 생계에 더 관심이 있다. 폐업 위기에 처한 주유소를 살리기 위해 ‘좀비 관광 콘텐츠’를 생각해낸다는 설정은, 절망보다 현실을 먼저 떠올리는 한국 사회의 단면을 풍자하는 듯 보인다. 여기에 황당한 대사와 과장된 연기, B급 연출의 미학이 더해지면서 웃음과 긴장의 경계가 무너지기 시작한다.
이런 장르적 전환은 단순히 코미디 효과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감독 이민재는 인터뷰에서 “좀비를 가족 영화로 다뤄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공포 대신,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한 외부 존재(좀비)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변해가는 서사를 담고자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영화는 후반부로 갈수록 가족 개개인의 서사에 집중하며, 웃음 속에 인간적인 여운을 남긴다.
캐릭터와 연기의 힘, 장르를 지탱한 배우들
이 영화의 중심은 역시 가족이다. 엄지원, 정재영, 이수경, 정가람, 박인환이 연기하는 가족 구성원들은 각자의 결핍과 욕망을 갖고 있다. 다소 과장된 캐릭터들이지만, 배우들의 진지한 연기가 그 과장을 억지스럽지 않게 만든다. 특히 정가람이 연기한 좀비 ‘쭈쭈’는 단순한 괴물이 아니라 연민을 자아내는 존재로 그려진다. 그는 말을 하지 않지만, 눈빛과 몸짓만으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또한 엄지원은 이 가족 내에서 가장 현실적인 시선을 가진 인물로, 웃기면서도 처절한 현실감을 전한다. 전체적으로 연기 앙상블이 잘 조화되어, 코미디와 감동을 동시에 끌어내는 데 성공하고 있다.
흥행 실패, 그러나 컬트 클래식으로 남을 가능성
기묘한 가족은 개봉 당시 흥행 성적이 좋지 않았다. 60만 명 정도의 관객 수에 그치며, 국내 관객의 반응은 엇갈렸다. 일부는 “유치하다”, “코미디가 과하다”는 반응을 보였고, 다른 일부는 “이런 시도는 오히려 반갑다”며 응원하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특히 넷플릭스를 통해 해외 관객이 유입되면서 이 영화는 점점 ‘컬트적인 지지’를 받기 시작했다.
이는 한국형 좀비 장르가 나아갈 수 있는 또 다른 방향성을 보여준다. 반드시 피와 공포가 난무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로컬적 상상력과 사회적 은유를 통해 코미디로도 충분히 진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영화는 지방 소멸, 가계 부채, 생계 절벽 같은 한국 사회의 현실을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로 비튼다.
그렇기에 기묘한 가족은 단지 ‘이상한 좀비 영화’가 아니라, 시대와 장르에 대해 고민한 흔적이 엿보이는 실험적인 작품이다. 좀비는 이제 단지 물고 뜯는 존재가 아니라, 가족이 되고, 사업 파트너가 되며, 때로는 거울처럼 우리 사회를 비추는 존재로 기능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영화는 그 가능성을 유쾌하게 펼쳐 보인 하나의 예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