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과 DC, 어디서 갈렸나 – 슈퍼히어로 전쟁의 결정적 분기점
영화 시장에서 슈퍼히어로 장르는 오랫동안 흥행의 보증 수표로 통했다. 그 중심에는 마블과 DC라는 두 거대 브랜드가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이 두 유니버스는 전혀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고, 지금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팬들과 소통하고 있다. MCU(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와 DCEU(DC 익스텐디드 유니버스), 도대체 어디서부터 길이 갈라진 것일까?
처음부터 마블이 앞서 있었던 것은 아니다. DC는 영화화된 슈퍼히어로 캐릭터 역사에서 ‘슈퍼맨(1978)’과 ‘배트맨’ 시리즈를 통해 먼저 대중성과 흥행을 확보했다. 하지만 마블은 2008년 ‘아이언맨’을 기점으로 독자적인 유니버스를 구축했고, 10년 이상 유기적으로 연결된 세계관을 보여주며 서사적 일관성과 팬 중심 전략에서 확실한 우위를 점했다. DC는 상대적으로 독립된 서사 중심의 단편적 기획을 이어오다, 뒤늦게 DCEU라는 이름 아래 세계관을 통합하려 했지만 마블만큼 매끄럽지는 못했다.
이후 양측은 전략의 성격 자체가 달라졌다. 마블은 장기적 설계, DC는 실험과 교체의 반복이라는 말이 붙기 시작했다. 마블은 ‘페이즈’ 개념을 도입해 각 단계를 명확하게 구성했고, 특정 캐릭터의 성장과 위기, 그리고 세계 전체의 균열이라는 거대한 흐름을 섬세하게 이었다. 반면 DC는 자주 감독과 제작진이 바뀌며 캐릭터 성격이나 톤이 영화마다 달라지는 혼란을 낳았다.
어두운 DC와 밝은 마블, 단순한 색감 차이가 아니다
많은 이들이 DC를 “어둡고 진지한 세계관”으로, 마블을 “유쾌하고 경쾌한 유니버스”로 구분한다. 이는 단지 조명이나 대사의 차이가 아니라, 콘텐츠 철학 그 자체의 문제다. DC는 신적인 존재로서의 영웅을 그리며 인간과의 거리를 유지했다. 반면 마블은 영웅을 인간으로 다루었다. 아이언맨은 죄책감 많은 억만장자였고, 스파이더맨은 입시 걱정하는 고등학생이었다.
이 차이는 관객의 감정적 접근성에 큰 영향을 주었다. 마블 캐릭터는 팬들에게 가족처럼 친숙해졌고, 영화 간 연결성이 높아지면서 마치 시리즈 드라마처럼 관람이 이어졌다. 반대로 DC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 나이트 트릴로지 이후, 잭 스나이더의 세계관이 방향을 주도했으나, 상업성과 철학 사이의 균형을 끝내 잡지 못했다.
제임스 건의 DC 리부트, 새로운 전환점이 될까?
최근 DC는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 마블에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를 성공시킨 감독 제임스 건을 DC 스튜디오 공동 대표로 영입한 것이다. 이는 단순한 감독 교체가 아닌, 세계관 자체의 리부트를 의미한다. 제임스 건은 “새로운 슈퍼맨 이야기부터 다시 시작하겠다”고 선언하며, 기존 DCEU를 종결하고 DCU라는 새로운 유니버스를 창조 중이다.
흥미로운 점은, 마블에서 ‘팀 플레이’ 전략을 잘 다뤘던 제임스 건이 DC에서도 유사한 접근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동시에 그는 캐릭터의 정서와 개성을 강조하는 연출로, DC 특유의 정체성과 유머를 동시에 품은 세계관을 만들 가능성을 보여준다. 관건은 관객이 그 리셋을 얼마나 받아들이느냐에 있다.
MCU의 정체기 vs DCU의 재출발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의 마블은 페이즈6로 들어가며 정체기를 맞고 있는 반면, DC는 ‘플래시’, ‘블루 비틀’ 등의 미진한 성과를 뒤로하고 완전한 재편을 시도하고 있다. 한쪽은 서사가 너무 복잡해졌고, 다른 쪽은 이제서야 서사를 하나로 묶으려 하고 있는 셈이다.
결국 이 싸움은 단기 성과가 아니라 팬을 어떻게 기다리게 만들고, 다시 돌아오게 하느냐의 문제다. 마블이 과거에 했던 그 작업을 DC가 지금 하고 있고, 마블은 그 성공의 여운을 어떻게 이어갈 것인가에 집중하고 있다.
두 유니버스는 이제 진짜 다른 길에 섰다. 중요한 건 경쟁이 아니라, 각자의 색깔을 얼마나 정교하게 다듬느냐다. 팬들이 보고 싶은 건 단순한 액션이 아니라, 이야기의 완성도와 감정의 진심이다. 그걸 먼저 해내는 쪽이 결국 다시, 관객의 마음을 가져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