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이 지루해졌다는 사람들, 과연 끝일까?
한때는 개봉만 하면 박스오피스를 휩쓸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이른바 MCU가 최근 들어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팬들조차 “예전만 못하다”, “너무 많고 너무 복잡하다”고 말한다. 실제로 페이즈4부터 현재의 페이즈6에 이르기까지, 마블이 내놓는 콘텐츠에 대해 ‘슈퍼히어로 피로감’이라는 단어가 본격적으로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흐름이 곧 마블의 끝을 의미하는 걸까? 단언하긴 어렵다. 마블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팬덤과 자본, 그리고 브랜드 신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페이즈6의 구조를 먼저 살펴보면, 이전과 다른 구성을 갖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중심축에 있었던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가 사라진 이후, 마블은 다양한 인종, 성별, 배경을 가진 뉴 히어로들을 전면에 내세웠다. ‘셰어드 유니버스’라는 개념은 유지하되, 확장과 세분화를 통해 더 많은 이야기를 시도하고자 한 것이다. ‘샹치’, ‘이터널스’, ‘문나이트’, ‘미즈 마블’ 등은 그 의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지만, 동시에 관객들이 더 이상 감정적으로 몰입하기 어려운 인물들이라는 평가도 받는다.
기존 마블 영화의 강점은 단순한 액션 이상의 무언가였다. 예컨대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저’는 정치 스릴러였고,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우주 가족극에 가까웠다. 하지만 최근의 작품들은 “세계관에 끼워 맞추는 듯한 느낌” 혹은 “TV 시리즈 같은 스핀오프”라는 반응이 많다. 여기에 **OTT 플랫폼 중심의 전개**가 관객의 피로도를 가중시켰다는 지적도 있다. 작품 하나를 이해하기 위해 너무 많은 사전 지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점은 캐주얼 팬을 멀어지게 만들었고, 결과적으로 흥행 수치에도 반영되었다.
‘멀티버스’는 진짜 해답일까?
현재 마블이 밀고 있는 가장 큰 키워드는 ‘멀티버스’다. 한 세계의 영웅이 아니라, 수많은 세계 속 버전들이 존재하고, 이것이 상호 연결된다는 설정은 처음엔 신선했다. 특히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나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에서는 그 설정이 효과적으로 작동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이 모든 게 다 멀티버스니까 어차피 죽어도 다시 나올 수 있겠네”라는 서사적 긴장감의 상실이라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영화 속 캐릭터들의 선택과 희생이 더 이상 무겁게 다가오지 않는다면, 관객은 더 이상 그 세계에 깊이 빠져들지 못한다. 이는 ‘엔드게임’ 이후의 마블이 해결하지 못한 핵심 과제 중 하나다. 과연 멀티버스는 새로운 가능성의 열쇠일까, 아니면 모든 것을 리셋하는 면죄부일까?
돌파구는 어디서 오는가?
그렇다고 해서 마블이 회복 불가능한 상태는 아니다. 오히려 최근에는 몇 가지 긍정적인 징조가 관찰되고 있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3’는 팬들에게 감동과 웃음을 동시에 주며 높은 평점을 기록했고, ‘데드풀3’에 울버린이 등장한다는 사실만으로도 팬들의 기대는 폭발하고 있다. 여전히 마블은 한 방을 남겨두고 있다.
또한 마블은 지금이야말로 세계관의 리셋이 아닌 리디자인이 필요한 시점임을 알고 있다.
캐릭터 중심의 이야기로 돌아가려는 움직임, 그리고 감독과 각본가에게 더 큰 창작의 자유를 주려는 시도는 단순한 전략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방향 전환이다. 마블이 다시 대중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유니버스를 위한 이야기가 아니라, 이야기를 위한 유니버스를 만들어야 한다.
마블의 내일, 여전히 기대할 수 있을까
마블이 지루해졌다는 말은 틀리지 않다. 하지만 그 말이 마블의 끝을 의미하진 않는다. 모든 대중문화는 순환한다. 새로운 캐릭터에 대한 이해가 쌓이고, 그 캐릭터가 자신만의 신화를 만들어낼 때, 마블은 다시 관객을 사로잡을 것이다. 어쩌면 지금은 필요한 ‘쉼표’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기다리는 것은 단순한 슈퍼히어로 액션이 아니다. 강력한 존재보다, 인간적인 이야기와 감정의 진폭이다. 마블이 그 사실을 다시 기억한다면, 다음 페이즈에서 우리는 또 한 번의 ‘엔드게임’을 목격하게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