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입형 수업은 교사의 역량을 어떻게 재정의하게 만들었나?
VR을 시작으로 AR, XR까지 확장된 몰입형 수업이 교실에 빠르게 도입되면서, 교사에게 요구되는 전문성도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단순히 콘텐츠를 설명하고 전달하던 시기에서 벗어나, 이제는 학습 경험 전체를 설계하고 학생의 몰입과 사고 흐름을 조율하는 능력이 교사의 핵심 역량이 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기술 활용 차원을 넘어 교육학적 관점, 정책적 기준, 교사 연수 체계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교사의 역할은 전통적 의미의 '지식 전달자'에서 '몰입 유도자'이자 '맥락 설계자'로 이동하고 있다.
그 맥락을 어떻게 설계하고 움직이는 가는 교사의 역량에 달려있는 것 같다.
기술 중심에서 맥락 중심으로: 수업 설계 역량의 전환
기존 수업에서 교사의 역량은 주로 강의력, 설명 능력, 평가 문항 작성 능력으로 정의되어 왔다. 그러나 몰입형 수업에서는 기술 기기를 잘 다루는 능력보다, 그 기술을 어떤 수업 흐름 안에서 어떻게 배치하고 해석할 것인가가 더 중요한 요소로 부상했다. 예를 들어, 같은 VR 콘텐츠를 사용하더라도 어떤 교사는 장면을 보여주는 데 그치고, 또 다른 교사는 해당 장면이 학생의 감정에 어떤 반응을 일으킬지를 예측하여 사전 질문을 설계하고, 수업 후에는 그것을 글쓰기와 토론으로 확장시킨다. 이 차이는 단순히 기능 습득 여부가 아니라, 교사의 수업에 대한 인식과 관점에서 비롯된다.
실제로 ‘Cognitive Affective Model of Immersive Learning (CAMIL)’ 연구는 몰입형 기술의 효과가 콘텐츠 그 자체보다는 학습자의 감정 반응, 몰입 경험, 후속 사고 전개에 달려 있으며, 교사의 역할은 이 과정을 설계하고 유도하는 데 있다고 강조한다. 따라서 몰입형 수업을 잘 운영하는 교사는 기술적 역량뿐 아니라 심리적, 맥락적 통찰력을 함께 갖춘 사람이어야 한다.
변화하는 전문성 기준: 연수와 평가 체계의 조정
교사의 전문성을 정의하는 기준 역시 변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지식 보유량과 수업 운영 능력이 핵심 평가 요소였다면, 현재는 몰입형 수업의 설계 능력, 학생의 반응을 분석하는 감수성, 기술을 교육적 맥락에 녹여내는 통합 능력이 새롭게 부각된다. 유럽연합이 개발한 ‘DigCompEdu(디지털 교사 역량 프레임워크)’에서도 이러한 변화가 반영되어 있으며, 국내 교육부도 2024년부터 이를 기반으로 한 디지털 연수 과정을 확대할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또한 연수 방식에서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기존 연수는 단순한 기기 조작법과 콘텐츠 소개에 그쳤다면, 최근 XR 연수는 ‘교실 맥락에서의 의미 설계’를 중심으로 구성된다. 예를 들어, 하나의 AR 콘텐츠를 어떻게 학습 목표에 맞게 변형할 수 있을지, 학생 수준별로 몰입을 유도할 수 있는 질문은 무엇인지 등을 함께 고민하게 만든다. 이는 연수가 단지 ‘기술을 배우는 시간’이 아니라, ‘수업을 재해석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실제 현장에서의 교사 역할 변화
현장 교사들도 이 변화의 중심에서 사고의 전환을 체감하고 있다. 한 교사는 “예전에는 어떤 내용을 설명할지를 고민했다면, 이제는 어떤 감정을 유도할지부터 먼저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몰입형 수업에서는 학생의 감정이 학습 동기를 유도하고, 그 감정이 글쓰기나 토론으로 확장될 때 깊은 학습이 일어난다. 이 흐름을 읽고 설계하는 능력이 교사의 핵심 역량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몰입형 수업은 또한 교사 간 협업 구조도 변화시키고 있다. 기술의 다양성과 콘텐츠의 복합성 때문에 교사 혼자 수업 전체를 설계하기 어렵고, 다양한 역할이 분담되는 구조가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교사들은 서로의 수업을 공유하고, 기술 도입 방식과 학생 반응 데이터를 나누며, 하나의 수업을 공동 설계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처럼 몰입형 수업은 교사 개인의 역량을 뛰어넘어, 집단적 전문성의 중요성을 드러내고 있다.
정책적 제안과 향후 과제
이러한 흐름은 교사 평가 정책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2030 교육평가체제 개편안에서는 ‘교육과정-수업-평가 일체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특히 수업 맥락 설계 능력을 평가 요소에 포함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이는 몰입형 수업의 구조가 단순히 기술 시연이 아니라, 전반적인 교육과정 설계 능력을 요구한다는 점을 반영한 것이다.
향후 과제로는 몰입형 수업을 운영하는 교사의 심리적 소진 예방, 기기 접근성 불균형 해소, 교사 간 연수 네트워크 강화 등이 있다. 특히 교사가 기술을 수업 속에서 철학적으로 해석하고, 그 안에서 자신만의 교육적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돕는 ‘성찰 기반 연수’가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결론: 몰입형 수업 시대, 교사는 의미의 설계자가 된다
VR, AR, XR이라는 새로운 기술이 교실을 바꾸고 있지만, 그 변화의 중심에는 언제나 교사가 있다. 그리고 이제 교사의 역량은 단순한 설명자에서, 몰입과 감정, 경험과 사고를 연결하는 ‘의미의 설계자’로 진화하고 있다. 기술은 끊임없이 바뀔 것이다. 그러나 그 기술을 통해 교육이 살아 있게 만드는 힘은, 결국 교사의 관점과 설계 역량에 달려 있다. 몰입형 수업은 바로 그 지점을 우리에게 묻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