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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좀비-인간, 새로운 종의 출현은 희망인가 파멸인가?

by 신리뷰 2025. 5. 14.

식물과 좀비 인간이 난입하는 렛 미인 좀비랜드

 

식물-좀비-인간, 새로운 종의 출현은 희망인가 파멸인가?

 좀비 영화는 끝없이 진화한다. 그 진화의 한 정점을 보여준 작품이 바로 렛 미 인: 좀비랜드, 원제 The Girl with All the Gifts다. 이 영화는 2016년 영국에서 개봉한 작품으로, 단순한 좀비물에 그치지 않고 기생생물학, 기후위기, 인간 진화의 철학적 질문까지 아우르며 강한 여운을 남겼다. 국내에서는 제목 번역 탓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넷플릭스를 통해 접한 시청자들에게는 ‘숨겨진 명작’으로 회자된다.

 영화는 인류 문명이 붕괴한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원인은 ‘오피오코르디셉스’라는 곰팡이형 기생 생물의 급속한 변이와 확산이다. 이 생물은 숙주의 신경계에 침투해 ‘식물-동물-기생체’가 결합된 새로운 존재를 만든다. 이는 실제로 개미를 조종하는 진균류에서 영감을 얻은 설정으로, 현실의 생물학에서 착안한 최초의 좀비 영화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좀비의 유래를 다시 쓰다, 기생 곰팡이의 공포

 이 작품이 특별한 이유는 기존의 좀비 개념을 완전히 재정의했다는 점이다. 단순히 바이러스가 아닌, ‘코르디셉스’라는 실존 곰팡이 기생 생물이 인간을 감염시킨다는 과학적 세계관을 토대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실제로 곰팡이 기생충은 열대 우림의 개미를 조종하여 숙주의 행동을 변경시키고, 사망 후 곰팡이를 퍼뜨리는 방식으로 생태계를 지배한다. 이러한 사실은 BBC 다큐멘터리 등에서 다뤄지며 과학자들의 관심을 받아왔다.

 The Girl with All the Gifts는 이러한 생물학적 설정을 확장하여 인간 사회에 적용한다. 감염된 인간들은 식욕과 본능만 남은 채 살아있는 좀비로 변하고, 이들을 '허너(Hunters)'라 부른다. 흥미로운 점은, 일부 어린이들은 감염되었음에도 사고력과 언어 능력을 유지한 채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이들은 인간도 좀비도 아닌 제3의 존재, 진화된 종으로 제시된다.

멜라니, 새로운 인류의 가능성과 두려움

 영화의 주인공은 바로 그 어린이 중 한 명인 멜라니다. 그녀는 군사 기지 내에서 실험대상으로 자라지만, 탁월한 지능과 인간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다. 영화는 그녀를 통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인류가 지금과 다른 형태로 진화한다면, 우리는 그 종을 인정할 수 있는가? 멜라니는 결국 인간 문명의 멸망과 새로운 종의 시작 사이에서, 파괴와 구원의 주체가 된다.

 이 선택의 순간은 이 영화가 단지 ‘좀비가 나오는 SF’가 아니라, 윤리와 생존, 생태와 인간 중심주의에 대한 반문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멜라니는 단순한 소녀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마주한 가장 극단적인 딜레마의 상징이 된다.

기후위기, 감염병, 진화론… SF의 옷을 입은 현실

 렛 미 인: 좀비랜드는 장르적으로는 좀비 SF이지만, 그 안에는 현재 인류가 맞닥뜨린 여러 위기의 그림자가 겹쳐 있다. 기후변화로 인한 생태계 교란, 인류 문명의 취약성, 그리고 팬데믹 이후 감염병에 대한 인식까지. 특히 곰팡이 기생체가 인간으로 종을 전이한다는 설정은, 코로나19 이후 다시 주목받게 되었다. 실제로 몇몇 곰팡이균은 고온 환경에서 병원성을 띠게 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마치 경고문 같은 작품이다. 단순히 ‘좀비가 온다’는 공포가 아니라, 인간의 오만함이 언제든 새로운 생태적 균형에 의해 뒤집힐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이는 최근 과학계가 경고하고 있는 ‘신종 슈퍼균’의 가능성과도 연결된다.

원작과 비교, 영화가 선택한 감정과 철학의 무게

 이 작품은 M.R. 케리(M.R. Carey)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원작은 철학적이고 감정적인 내면 묘사에 집중했고, 영화는 그 흐름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면서 긴장감을 더했다. 감독 콜름 맥카시는 비주얼의 잔인함보다는 인간의 내면과 윤리적 판단의 비극성에 초점을 맞추었다. 멜라니 역의 세니아 난아(Sennia Nanua)는 아역답지 않은 깊이 있는 연기로 주목받았다.

 또한 글렌 클로즈(Glenn Close)가 과학자 ‘카롤린 박사’ 역으로 출연하며 영화에 묵직한 무게감을 실었다. 그녀의 캐릭터는 ‘인간 생존’이라는 대의 앞에서 어떤 도덕적 타협을 허용할 것인가라는 철학적 질문을 대변한다.

 결말에서 멜라니가 선택하는 방식은 단순한 결말이 아니다. 기존 문명의 종료와 새로운 질서의 탄생을 의미하며, ‘구원자’이자 ‘종말자’로서의 복합적 위치를 드러낸다. 이 역설적 결말이야말로, 이 영화가 좀비물의 외피를 쓴 철학 영화로 평가받는 이유다.

 좀비는 이제 단지 피와 공포의 상징이 아니다. 우리가 외면해온 진화와 변화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리고 렛 미 인: 좀비랜드는 그 변화를 인정하는 순간, 인간이 얼마나 취약하고 동시에 얼마나 이기적인지를 가차 없이 보여준다. 이 영화가 묻는 질문은 단 하나다. 다음 진화의 주체가 인간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