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전염병과 권력, 왜 〈킹덤〉 시리즈는 세계에서 통했는가?

by 신리뷰 2025. 5. 15.

전염병과 권력, 킹덤은 무엇이 통했나

전염병과 권력, 왜 〈킹덤〉 시리즈는 세계에서 통했는가?

 넷플릭스 오리지널 〈킹덤〉 시리즈는 좀비 장르와 사극의 결합이라는 파격적인 시도로 시작됐지만, 단순한 신선함 이상의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시즌1이 공개된 2019년부터 〈킹덤〉은 전 세계 시청자에게 충격과 열광을 동시에 안겨주었고, 특히 팬데믹 직후에는 다시금 재조명되며 글로벌 콘텐츠로 자리잡았다. 그런데 과연 무엇이 이 한국 사극 좀비물이 국경을 넘어 전 세계적 공감을 얻게 만들었을까. 그 핵심에는 단순히 좀비의 공포가 아니라, 전염병이라는 시대적 현실과 권력에 대한 본능적인 질문이 담겨 있다.

 〈킹덤〉 시리즈의 가장 큰 특징은 전염병이라는 위기를 ‘현재의 재난’이 아닌 ‘과거의 정치 시스템’ 속에서 풀어낸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히 배경을 조선으로 옮긴 것이 아니라, 질병이라는 재앙이 어떤 사회 구조를 통해 증폭되고 은폐되며, 누가 책임지고 누가 희생되는가에 대한 철저한 구조적 질문을 던진다. 이 점이 바로 세계적인 공감을 끌어낸 결정적 요인이다.

조선의 역병, 세계인의 경험이 되다

 〈킹덤〉은 조선이라는 익숙지 않은 배경에서 전염병이 창궐하는 이야기를 그리지만, 그 전개는 세계 어디에서나 유효한 감정과 질문을 품고 있다. 특히 2020년 이후 코로나19 팬데믹을 경험한 세계인들에게, 정보의 은폐, 정치적 책임 회피, 사회적 약자들의 고통은 현실 그 자체로 다가왔다. 〈킹덤〉에서 선왕의 죽음을 숨기고 좀비화시킨 대비와 조정, 그리고 백성의 죽음을 방치하는 권력층의 모습은 당시 전 세계 정부와 미디어의 대응과 겹쳐 보이기도 했다.

 이처럼 작품은 특정 국가의 과거가 아니라, 현대 사회가 마주한 위기와 공포를 고전적 언어로 풀어낸다. 그래서 한국어로 만들어진 조선 배경 드라마임에도, 이 작품은 문화적 장벽 없이 이해되고, 전 세계 시청자에게 위화감 없는 몰입을 가능하게 했다. 특히 질병이 ‘무엇이 통제되고, 무엇이 공개되는가’라는 정치 문제로 치환되는 방식은 미국, 유럽, 남미 등 다양한 국가에서 유사한 경험과 감정을 환기시켰다.

조선의 권력 구조, 세계 보편의 이야기로

 〈킹덤〉 시리즈에서 보여지는 조선 사회는 유교적 질서와 신분제가 지배하는 구조였다. 하지만 그 안에서 벌어지는 권력 투쟁, 정보의 독점, 계급 간 생존 격차는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도 볼 수 있는 이야기다. 대비마마의 권력 욕망, 조학주의 정치술, 세자 이창의 고뇌는 각기 다른 사회적 위치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본능적인 행동으로 해석되며, 국적과 언어를 초월한 보편성을 갖는다.

 이 보편성은 단순한 서사적 장치가 아니라, 좀비라는 초현실적 존재를 매개로 더욱 극대화된다. 좀비는 더 이상 괴물이 아니라, 정치 시스템이 낳은 결과이며, 백성의 고통이 물리적으로 형상화된 존재다. 그래서 좀비의 등장은 시청자에게 피와 살의 공포를 주는 동시에, 누군가의 무책임으로 만들어진 현실의 결과를 상징하는 메타포로 읽힌다.

비서구 사극 장르의 세계적 확장 가능성

 〈킹덤〉 시리즈가 갖는 또 하나의 차별성은, 한국이라는 비서구 문화권의 사극이 세계 무대에서 주류 콘텐츠로 인정받았다는 점이다. 이전까지 글로벌 시장에서 사극은 주로 중세 유럽이나 고대 로마, 미국 개척시대가 중심이었고, 한국의 조선은 그만큼 낯선 공간이었다. 하지만 〈킹덤〉은 오히려 그 낯섦을 강점으로 전환한다. 갓, 흥례문, 궁궐, 주막, 기방, 호패 제도 등 모든 문화적 디테일이 신선한 시각적 경험으로 작동한 것이다.

 이와 동시에 작품은 조선 시대 복식과 건축, 무기 체계, 위계질서 등을 철저히 고증하면서, 문화적 낯섦을 정보로 환기시키는 데 성공한다. 다시 말해, 한국 사극 특유의 비언어적 미장센이 글로벌 시청자에게 ‘문화 콘텐츠’로 읽히면서, 한국 역사에 대한 흥미를 촉발시키는 교두보가 되었던 셈이다. 이는 단순히 장르의 성공을 넘어, 비서구 문화가 콘텐츠 시장에서 어떤 방식으로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주목받았다.

좀비 장르의 진화와 정치적 서사의 결합

 좀비물은 본래 미국 대중문화에서 기원했지만, 〈킹덤〉은 그 장르를 완전히 다른 층위로 끌어올렸다. 특히 〈킹덤〉은 기존 좀비물의 핵심 공식인 ‘감염-도망-생존’ 대신, ‘감염-은폐-통치’라는 정치 서사로 재편하며 장르적 진화를 보여준다. 이는 〈부산행〉 이후 한국형 좀비물이 나아간 또 다른 경로로 평가된다. 단순한 공포보다 사회와 권력, 역사에 대한 시선을 확장한 것이다.

 결국 〈킹덤〉 시리즈는 단순히 ‘좀비가 등장하는 조선 시대 이야기’가 아니라, 인류가 언제나 반복해 온 전염병과 권력의 순환 구조를 정면으로 해석한 드라마다. 그래서 이 작품은 지역성과 보편성, 장르성과 현실 비판이라는 네 가지 요소를 모두 통합해낸 드문 사례로 남는다. 그것이 바로 〈킹덤〉이 단순한 히트작이 아니라, 글로벌 콘텐츠 시장에서 하나의 전환점이 될 수 있었던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