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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덤: 아신전, 좀비는 어떻게 태어나는가? 기원과 복수, 그리고 식물의 역습

by 신리뷰 2025. 5. 14.

킹덤 아신점같은 영화는 좀비영화의 패러다임을 주었다

킹덤: 아신전, 좀비는 어떻게 태어나는가? 기원과 복수, 그리고 식물의 역습

 좀비가 단지 감염의 산물로만 그려지던 시대는 지났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킹덤: 아신전은 이 장르가 단순한 공포물이나 생존극을 넘어 역사, 식물학, 설화, 복수의 서사로 확장될 수 있음을 증명한 작품이다. 본편 시리즈인 킹덤 시즌1과 시즌2가 조선 후기 역병과 정치 음모를 다뤘다면, 이 프리퀄은 그 모든 것의 기원이 되는 질문 하나에 집중한다. 좀비는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그 답은 놀랍게도 인간이 아닌 ‘식물’로부터 시작된다. 극 중 중심 소재인 생사초는 북방의 설산 지대에서 자생하는 비밀스러운 약초로 등장한다. 얼어붙은 땅에서 피어나며, 죽은 이를 다시 걷게 만든다는 전설을 지닌 이 식물은 실존 식물이 아니라 민속 설화와 생물학적 상상력이 결합된 허구의 창조물이다. 하지만 이 허구는 너무나도 설득력 있게 조선이라는 역사 공간 안에 녹아들어 있다.

생사초, 신화적 허구인가? 조선 후기에 맞닿은 식물학적 상상

 작품 속 생사초는 단순한 좀비 바이러스의 전달 매개체가 아니다. 인간의 욕망에 의해 발견되고, 복수를 위해 의도적으로 악용되며, 그 자체로 살아있는 존재처럼 기능한다. 이 식물이 가진 특징 중 가장 핵심은 사망 직후의 체온 상태에서만 효과를 발휘한다는 설정이다. 이는 당시 조선의 의학 수준과 민간요법, 사후처리 방식 등을 현실감 있게 재현하며 시청자의 몰입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이 설정은 나아가 자연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는 메시지로 이어진다. 인간이 그것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생사초는 생명을 살릴 수도 있고 세상을 파멸시킬 수도 있다. 작품은 명확히 말하지 않지만, 생사초는 인간의 분노와 기억을 매개로 또 다른 존재로 변이될 수 있는 가능성을 암시한다.

아신, 복수와 비극이 만든 여성 전사

 이 작품의 중심은 역시 아신이라는 인물이다. 극 중 아신은 야인 출신으로, 조선과 여진 사이의 경계 지역인 북방 세력 간 갈등 속에서 가족과 마을을 모두 잃는다. 그녀의 어린 시절은 차별, 배제, 침묵 속에서 소멸되며, 오로지 복수만을 목표로 살아간다. 그 과정에서 아신은 생사초의 비밀을 알게 되고, 결국 그 힘을 사용해 자신을 파괴한 모든 이들에게 응징을 감행한다.

 아신은 기존의 여성 캐릭터가 가지는 한계를 완전히 탈피한 인물이다. 그는 단순히 사랑이나 모성, 보호의 주체가 아니라 파괴와 탄생의 동시적 존재로 등장한다. 이 점에서 킹덤: 아신전은 좀비 장르에서 보기 드문 여성 주도 복수 서사를 성공적으로 구현한 드문 사례다. 전지현이 연기한 성인 아신은 대사보다 눈빛과 몸짓으로 감정을 전달하며, 극 후반으로 갈수록 인간성의 마지막 끈마저 놓는 장면은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역사와 허구의 결합, 설화적 분위기와 북방 세계관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장소는 실재하는 지명이 아닌, 설화적 상상력이 덧입혀진 국경지대다. 극 중 ‘파저위’라는 명칭은 실제 여진족과의 경계를 암시하며, 조선 후기 국경 관리 체계와도 닮아 있다. 또, 조선 정부의 정보 조직인 ‘차지철의 사람들’은 역사적 팩트라기보다는 상상된 구조지만, 그 내부 논리는 당시 외교, 첩보, 내치 전략과 맞닿아 있다.

 이는 역사적 리얼리즘과 설화적 판타지가 절묘하게 결합된 킹덤 세계관의 대표적 특징이다. 특히 북방 설경의 촬영, 복식의 변형, 무기와 사냥 방식 등은 조선 후기의 기록과 고증을 충실히 반영하면서도, 일종의 민담적 분위기를 덧입히며 장르적 긴장을 유지한다. 이는 전통 사극을 보듯 하다가도 순간순간 판타지의 세계로 빨려들게 만드는 독특한 미학을 형성한다.

 전체적으로 보면 킹덤: 아신전은 한 편의 영화라기보다는 대서사의 문을 여는 프롤로그에 가깝다. 이 작품은 본편에서 언급되지 않았던 기원, 구조, 인물의 내면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기능하며, 향후 시즌에서 더 깊이 다뤄질 떡밥을 유려하게 흘려준다. 그 안에는 단순히 좀비를 죽이고 사는 문제가 아닌, 기억, 분노, 종말, 탄생이라는 철학적 주제들이 겹겹이 숨겨져 있다.

 결국 이 작품이 우리에게 묻는 질문은 이것이다. 좀비는 외부에서 온 재앙이 아니라, 우리가 만든 생물학적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누군가의 비극은, 누군가에게 또 다른 시작이 될 수 있다는 사실. 킹덤: 아신전은 그 사실을 가장 조용하면서도 잔혹한 방식으로, 그리고 가장 아름다운 시각적 완성도로 보여주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