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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덤, 좀비가 파고든 조선 정치의 민낯

by 신리뷰 2025. 5. 15.

킹덤, 좀비 영화의 스며 있는 역사에 대해서 알아본다

킹덤, 좀비가 파고든 조선 정치의 민낯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킹덤은 좀비를 내세운 사극이지만, 사실상 가장 중심에 있는 것은 정치다. 조선 후기라는 배경 안에서 권력은 생명을 좌지우지하는 도구가 되고, 살아남기 위한 권모술수가 좀비보다 더 잔혹하게 묘사된다. 시즌1과 시즌2는 표면적으로는 역병과의 싸움이지만, 그 이면에는 왕권 공백, 신분제, 여성 권력, 신하들의 줄서기가 맞물린 거대한 정치 드라마가 숨겨져 있다.

 작품의 시작점은 선왕이 역병으로 사망했음에도, 그 사실을 은폐한 대비마마의 음모다. 대비는 임신한 상태로 왕위 계승권을 지닌 자신의 자식을 지키기 위해, 남편의 죽음을 숨기고 좀비로 연명시킨다. 이는 단순히 가족 보호가 아니라, 여성이라는 한계 안에서 권력을 지키기 위한 극단적인 선택으로 읽힌다. 유교 사회에서 여성은 정치의 중심에 설 수 없었지만, 대비는 궁 안에서 절대적인 실권을 쥐며 조선을 움직인다.

 이때 중요한 키워드가 바로 ‘왕이 죽었음을 숨기는 행위’다. 이는 곧 국정의 마비, 정보의 독점, 후계 질서의 왜곡을 의미하며, 대비가 좀비라는 비상식적 도구까지 동원한 건 결국 정통성에 대한 불안 때문이다. 조선이라는 국가는 혈통과 정통성에 기반을 두고 있었고, 이것이 무너질 경우 왕조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집착이 대비의 결정을 밀어붙인 것이다.

조학주, 좀비보다 두려운 정치 기술자

 조학주는 이 시리즈의 또 다른 핵심 인물이다. 형조판서이자 하천한 출신의 권문세가 수장이었던 그는, 외형상 대비에게 충성을 다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모든 상황을 조율하는 내부 권력자다. 좀비 바이러스를 무기로 전락시켜 권력층에만 유용하게 이용하고, 백성의 희생은 아무렇지도 않게 묵살하는 그의 태도는 조선 후기 신분 사회의 정치적 냉소주의를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조학주는 유생 출신도 아니고 고결한 사대부 계급도 아니다. 그가 권력을 획득한 경로는 전략과 정보, 그리고 인간을 향한 철저한 불신이다. 이는 곧 유교 질서의 붕괴와 신흥 정치 세력의 등장을 상징하며, 겉보기엔 유능한 개혁가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결국 그는 전체 백성을 자신의 실험 대상으로 삼는다.

좀비, 권력을 비추는 거울로 작동하다

 킹덤에서 좀비는 단순한 재난이 아니다. 오히려 권력을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된다. 조학주와 대비는 좀비를 ‘기밀’로 유지하며, 정치적 반대파를 숙청하고 자신들에게 불리한 정보는 통제한다. 즉, 감염자들은 사회적으로 버림받은 존재일 뿐 아니라, 정보 체계 밖에서 존재조차 부정당한 실체들이다. 이 구조는 곧 조선 사회가 가진 신분의 벽과 공권력의 불균형을 그대로 반영한다.

 조학주의 대사 중 “백성은 쉽게 죽고 쉽게 잊힌다”는 표현은, 좀비를 통제 가능한 자원으로 바라보는 상징적 시선이다. 이때 좀비는 단순한 공포가 아니라, 억눌린 민초들의 무력한 상태, 그리고 국가는 그들을 구조하는 것이 아니라 통제하고 재배치하는 권력 주체로 묘사된다. 킹덤은 그런 점에서 좀비를 권력의 결과물로서, 또는 권력 자체가 만들어낸 괴물로서 제시한다.

세자 이창, 유교적 가치와 인간성 사이의 갈등

 그 와중에 중심 인물인 세자 이창은 유교적 도덕과 실질적 통치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하는 리더로 그려진다. 그는 태생적으로 어머니의 신분이 낮아 정통성 논란을 안고 있으며, 정치적 세력으로부터 항상 배제되어 왔다. 하지만 역병 사태를 통해 백성과 직접 맞닥뜨리며, 점점 현실 정치와 타협을 고민하게 된다. 특히 시즌2 후반부에서는 그가 유교적 이상을 버리고 실리적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는 순간이 강하게 그려진다.

 즉, 이창은 조선이 이상적으로 유지하려 했던 유교 국가의 이미지와, 실제 권력의 잔혹함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는 인물이다. 그런 점에서 그는 대비와 조학주와는 다른 방식으로 ‘좀비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라는 질문에 접근한다. 정치란 무엇이고, 누구를 위한 통치인가라는 질문이 킹덤 시즌1·2를 관통하는 주제라면, 이창은 그 질문을 온몸으로 감당하는 캐릭터다.

 결국 킹덤은 ‘좀비’라는 상징을 통해 조선의 권력 구조와 그 위선, 그리고 붕괴를 정면으로 응시한다. 대비의 왕권 집착, 조학주의 권모술수, 이창의 고뇌는 모두 시대가 만들어낸 필연이며, 작품은 그 과정을 잔혹하고도 설득력 있게 따라간다. 좀비는 외부에서 온 공포가 아니라, 내부에서 생성된 권력의 부산물일 뿐이다. 그래서 킹덤은 단순히 무서운 좀비물이 아니라, 조선이라는 시스템의 그림자를 들춰내는 정치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