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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 디즈니와 다르다는 걸 증명할 수 있을까?

by 신리뷰 2025. 5. 8.

픽사, 디즈니와는 다르다

 

픽사, 디즈니와 다르다는 걸 증명할 수 있을까?

 한때 픽사는 디즈니와는 전혀 다른 감성의 스튜디오로 여겨졌다. 3D 애니메이션을 개척했고, 기술이 아닌 이야기로 관객을 울렸으며, 단순한 동화를 넘어 삶의 본질을 묻는 질문을 던졌다. “픽사 영화는 무조건 믿고 본다”는 말이 생겨난 것도 이 시기였다. 하지만 2006년 디즈니에 인수된 이후부터, 이 두 브랜드의 콘텐츠는 점차 비슷해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과연 지금의 픽사는 디즈니와 다른 스튜디오로 남아 있을 수 있을까?

 브랜드란 단순한 로고나 제작사가 아니다. 그것은 관객이 그 이름에서 기대하는 감정, 스타일, 메시지의 집합이다. 그리고 지금, 관객은 픽사의 이름에서 과거만큼의 ‘다름’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그림체, 스토리 구조, 감정 연출 방식에서 디즈니와 픽사의 경계가 흐릿해졌다는 목소리가 늘고 있다.

정체성은 어디까지 유지되었나?

 픽사의 원래 정체성은 ‘일상 속에서 삶의 본질을 끄집어내는 서사’였다. ‘토이 스토리’는 장난감 세계를 통해 관계와 성장의 의미를, ‘업’은 한 노인의 모험 속에서 상실과 회복을 그렸다. 이런 픽사의 작품은 한 편의 철학에 가까웠고, 관객은 그것을 믿고 극장을 찾았다.

 하지만 최근작인 ‘엘리멘탈’이나 ‘루카’, ‘터닝 레드’는 감성적 시도는 유지하고 있지만, 기존 픽사의 철학적 깊이나 내면 탐구가 약해졌다는 평가도 함께 따라붙는다. 디즈니식의 선명한 교훈과 빠른 전개, 시각적 중심 연출이 일부 작품에서 강하게 드러나며, 픽사 고유의 '느긋한 서사'와 '감정의 여백'이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관객은 두 브랜드를 어떻게 구분하는가

 오늘날 대부분의 관객은 픽사와 디즈니의 구분을 오프닝 로고에서만 인식한다. 실제로 ‘소울’, ‘루카’, ‘엘리멘탈’을 본 후 “이게 디즈니야? 픽사야?”라는 질문이 자주 오간다. 이는 브랜드 정체성 혼용이 관객의 인식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림체와 색감은 유사해졌고, 뮤지컬 구조 없이 감정을 서사로 풀어가는 방식도 디즈니의 주류 작품에서 종종 등장한다. 반대로 픽사 역시 전통적 가족 코미디 구조나 고정된 성격의 캐릭터 사용 등, 디즈니가 오랫동안 해왔던 스타일을 채택하고 있다. 결국 구분점은 점점 흐려지고 있고, 픽사의 차별성은 점차 브랜드 이미지가 아니라 ‘작품 개별성’에 의존하게 되었다.

픽사가 디즈니와 다르다는 증거는 무엇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픽사만의 색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것은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방식이 아니라, ‘왜 눈물이 나는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이야기의 설계’에 있다. 픽사는 캐릭터의 외적 행동보다, 내면의 선택에 중심을 두는 스토리텔링을 고수하고 있으며, 그 흐름은 여전히 디즈니의 뚜렷한 악당-해결 구도와 구별된다.

 또한 픽사는 단순한 권선징악보다 ‘옳고 그름의 회색지대’를 탐색하는 데 익숙하다. ‘인사이드 아웃’의 슬픔은 제거해야 할 감정이 아니라 중요한 감정으로 받아들여지고, ‘소울’에서는 인생의 의미에 정답이 없다는 결론을 제시한다. 이런 복합적 메시지는 여전히 픽사만의 깊이를 지키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정체성 재정립이 필요한 시점

 픽사가 디즈니 안에 편입된 지 벌써 18년째다. 이제는 ‘다른 회사였다’는 사실 자체가 낯설어진 세대도 많다. 이런 시점일수록 픽사는 자신만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다시 물어야 할 때다. 단순히 디즈니의 한 부서로 기능할 것이 아니라, 창의성과 실험성을 유지하는 독립된 브랜드로서 존재감을 회복할 필요가 있다.

 그 시작은 더 대담한 서사와, 더 느린 이야기, 더 묵직한 질문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감동은 기술이 아니라 용기에서 온다. 픽사가 다시 한번 그것을 증명할 수 있다면, 관객은 여전히 ‘이건 픽사니까’라는 말을 되뇌며 극장을 찾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