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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은 왜 VR 수업을 기억하는가?

by 신리뷰 2025. 6. 23.

강렬한 학습인 VR수업, 효과적인 교육적 측면

 

학생은 왜 VR 수업을 기억하는가?

 최근 학교 현장에서 VR 기반 수업이 늘어나는 추세 속에서, 교사들은 흥미로운 반응 하나를 공유하곤 한다. 수업 내용을 정확히 기억하진 않더라도, 학생들은 “그 장면이 계속 생각난다”거나 “내가 그 공간에 있었던 것 같았다”고 말한다. 이 말은 단순히 기술이 새로워서가 아니라, VR 수업이 **경험 중심의 기억**을 만들어내는 데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수업 내용을 기억하는 게 아니라, 수업을 했던 ‘내 기억’을 말하더라고요.” – 수업 후 학생 반응을 기록한 교사

기억되는 건 지식이 아니라 ‘감정이 있는 장면’

 학습자의 기억은 정보를 단순히 저장하는 과정이 아니라, 감정과 연결될 때 비로소 깊어진다. 특히 VR 수업은 기존의 시청각 자료를 넘어서 학습자가 공간 안에 존재하고, 스스로 결정하고 반응하는 구조를 가진다. 이는 교육심리학에서 말하는 정서적 맥락 기억(emotional contextual memory)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수업에서 특정 장면이 인상 깊게 남는 이유는, 그 장면 속에서 학습자가 감정을 경험하고 몰입했기 때문이다. 특히 1인칭 시점에서 ‘자신이 무엇을 느꼈는가’가 남기 때문에, VR 수업은 단순한 시청이나 참여보다 훨씬 강한 기억 흔적을 남긴다. 이는 단순히 “봤다”가 아니라, “그 안에 있었다”는 체감에서 비롯된다.

 이전에 내가 작성한 논문에서 다룬 음악 감상 수업의 경우, VR 오페라 체험 장면은 대부분의 학생에게 오래 기억되는 수업으로 작용했다.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마치 ‘공연 안에 있었다’는 구조는 학습자가 감정적 몰입을 통해 음악을 해석하게 만든다. 기억은 정보가 아니라, 감정이 동반된 ‘이야기 장면’으로 남는다.

교육 심리학이 설명하는 체험 기반 기억의 원리

 이러한 현상은 교육심리학 이론에서도 설명 가능하다. 에드가 데일의 학습의 원추 이론은 체험 기반 학습이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학습 방식임을 시사한다. 수동적인 듣기, 읽기, 보기보다, 직접 해보고 겪은 경험이 학습 효과와 기억 유지율 모두에서 뛰어나다는 것이다.

 VR 수업은 이 이론이 제시한 실천형 학습의 구조를 실감적으로 실현해준다. 학습자가 가상의 공간에서 오감을 동원하며 스스로 경험하고 움직이는 과정은 단순한 정보 습득이 아닌, 자기 주도적 맥락 구성의 결과로 이어진다. 학생은 무엇을 ‘외웠는지’보다, 무엇을 ‘겪었는지’를 중심으로 수업을 회고한다.

 이처럼 VR 수업은 체험과 감정, 해석이 결합된 학습을 가능하게 하며, 이는 곧 학습자의 기억구조를 정보가 아닌 ‘경험적 에피소드’로 재구성시킨다.

수업 설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억을 남길 수 있는 구조’

 VR 수업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기술보다 구조가 먼저다. 기술이 아무리 정교해도, 학습자가 주체가 되지 않는 설계라면 기억에 남기 어렵다. 학습자가 ‘무엇을 볼지’보다, ‘무엇을 선택할지’, ‘무엇을 느낄지’에 집중하는 수업이 되어야 한다. 감정과 몰입이 수업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작동해야 하며, 그 흐름은 교사의 설계에서 비롯된다.

 본 연구에서 설계한 음악 수업은 VR 감상을 도입한 이후, 질문 유도와 글쓰기로 연결되는 구조를 갖췄다. 학생은 감상 후 “왜 그 장면이 인상 깊었는가?”, “당신은 이 장면에서 어떤 역할을 맡았다고 느꼈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수업을 재구성하게 된다. 이러한 흐름은 학습 내용을 재인식시키는 동시에, 학습의 감정적 흔적을 정돈하게 만든다.

 교사는 기술 운영자나 콘텐츠 소비자가 아닌, 학습의 감정 구조를 설계하는 사람으로 기능해야 한다. 기술이 학습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학습자가 기억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의미를 묶어내는 ‘서사 설계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억은 단순히 남는 것이 아니라, 구조 안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 본 논문 결론 중에서

결론: 학생은 ‘배운 것’보다 ‘겪은 것’을 기억한다

 결국 학생이 VR 수업을 기억하는 이유는 그 수업이 지식이 아니라 감정의 경험으로 남았기 때문이다. 수업 내용보다 ‘그 안에 있었던 나’를 기억하고, 정보보다 ‘느꼈던 감정’이 먼저 떠오른다. 학습자는 기억 속에서 정보를 찾지 않고, 자신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통해 학습을 복원한다.

 이제 수업은 ‘기억을 남기는 방식’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VR 수업이 가진 몰입 구조는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도구이자 공간이다. 그리고 그 공간을 의미 있는 학습 경험으로 만드는 것은 결국 교사의 설계와 학습자의 감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