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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이 기술보다 먼저인 수업, 가능한가요?

by 신리뷰 2025. 6. 11.

학생이 기술보다 먼저인 교육

학생이 기술보다 먼저인 수업, 가능한가요?

 기술은 교육의 풍경을 바꾸었다. VR, AR, 인공지능, 메타버스. 눈을 사로잡고 귀를 자극하는 콘텐츠가 교실 안에 들어온 지 오래다. 덕분에 학생들은 더 이상 칠판과 교과서만 보며 앉아 있지 않는다. 몰입은 쉬워졌고, 흥미는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하지만 수업이 끝난 뒤 문득 생각하게 된다. 이 모든 변화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학생을 중심에 두고 있는가? 정말 진지하게 고민해봐야할 문제와 인식이라고 생각한다.

 VR 수업을 준비하면서 나는 이 질문을 자주 마주하게 되었다. 화려한 콘텐츠, 정확하게 분절된 정보, 정교한 시뮬레이션. 그 안에서 학생들은 정말 ‘나’로 존재할 수 있을까? 기술이 보여주는 것은 많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학생의 속도는 모두 다르다. 반응도 다르고, 느끼는 방식도 제각각이다. 그런데 수업의 흐름이 기술의 구조에만 맞춰지기 시작하면, 가장 중요한 ‘학생 각자’는 점점 수업 밖으로 밀려날 수 있다. 이 부분이 매우 조심스러운 부분인데, 교사가 어떻게 어떤 교육적 방향을 제시하는가에 따라 수업 분위기와 학생이 느끼는 학습의 정도도 매우 다르다고 생각한다.

기술보다 느린 학생의 속도

 한 번은 VR 콘텐츠를 활용해 오페라 무대를 보여주는 수업을 했다. 장면은 빠르게 전환되고, 음악은 감정을 고조시켰다. 어떤 학생은 흠뻑 몰입했지만, 어떤 학생은 처음엔 기기에 익숙해지느라 장면의 흐름을 따라가기 어려워했다. 또 어떤 학생은 장면이 끝난 뒤에도 아무 말 없이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생각했다. 이 속도가 누구에게 맞춰진 것일까?

 기술은 항상 일정한 속도로 작동한다. 하지만 교육은 학생의 속도에 맞춰야 한다. VR 수업이 학생 중심 수업이 되기 위해선, 기술이 보여주는 콘텐츠 자체보다도, 그 콘텐츠를 ‘어떻게 기다려줄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수업 흐름에서 의도적으로 ‘멈춤의 시간’을 넣기 시작했다. 체험 후 바로 다음 활동으로 넘어가지 않고, 조용히 감상을 정리하거나, 가볍게 손으로 그려보는 시간을 주었다.

 그 작은 여유 속에서 학생들은 자신만의 속도로 생각을 정리했다. 어떤 학생은 “지금 말해도 되나요?” 하고 물었고, 어떤 학생은 감상을 글로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때 느꼈다. 학생이 먼저인 수업이란, 기술보다 사람의 시간을 더 신뢰하는 수업이라는 걸.

학생이 진짜 반응하는 순간은 따로 있다

 VR 수업의 몰입감은 강력하다. 하지만 진짜 반응은 장면 속에서만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VR을 벗은 후, 학생들의 표정과 말투 속에 더 진한 감정이 담겨 있을 때가 많았다. 수업 후 학생과 나눈 짧은 대화가 더 깊은 통찰을 남긴다. “선생님, 그 장면에서 왜 저 사람이 울었을까요?” 같은 질문이 나왔을 때, 나는 그 수업이 단순한 체험을 넘어섰다는 것을 직감한다.

 학생이 반응할 수 있는 수업은,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이 있는 수업이다. 기술은 그 공간을 열어주는 도구일 뿐, 중심은 아니다. 나는 수업 중간에 질문지를 나눠주는 방식도 자주 쓴다. 다 같이 토론하는 대신, 혼자만의 생각을 먼저 적게 한 후, 서로의 의견을 천천히 꺼내보도록 한다. 그렇게 하면 목소리가 작은 학생도 자기 생각을 드러낼 수 있고, 콘텐츠가 제공하지 않은 감정도 수업 속에서 공유된다.

 학생의 반응이 기술을 이끄는 수업, 그게 내가 원하는 방향이었다. 기술이 학생을 움직이게 하는 수업이 아니라, 학생이 기술을 활용해 자기 감각을 말하게 되는 수업. 그것이 진짜 ‘교육’이라고 믿게 되었다. 그리고 확신한다.

학생이 중심에 있다는 것의 의미

 ‘학생 중심 수업’이란 말을 교육 현장에서 흔히 쓴다. 하지만 기술이 강력해질수록 그 말은 더 구체적이어야 한다. 학생 중심이란, 수업의 모든 요소가 학생의 관점에서 설계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어떤 콘텐츠를 쓸지보다, 학생이 어떤 질문을 하게 될지를 먼저 고민하는 것. 어떤 장비를 쓸지보다, 학생이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될지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 그것이 중심을 되찾는 방법이다.

 나는 기술이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잘 활용하면 수업의 가능성을 확장시킨다. 하지만 그 중심축이 학생이 아니라 콘텐츠일 때, 수업은 소비로 끝나고 만다. 기술은 교육의 도구일 뿐, 목표가 아니다.

 학생이 기술보다 먼저인 수업은 가능하다. 그리고 그 수업은 기술이 점점 많아지는 지금, 더 절실하게 필요한 수업이다. 결국 교사가 바라봐야 할 것은 장면이 아니라, 장면을 보고 있는 ‘학생’이라는 존재 그 자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