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기술이 예술과 창작의 영역까지 빠르게 침투하면서, 우리는 이제 AI가 만든 영화를 실제로 만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단순한 상상이 아닌 현실로 다가온 이 변화는 영화 산업의 패러다임을 뒤흔드는 동시에, 창작과 윤리라는 묵직한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
AI로 제작된 영화 사례들
세계 최초로 전 과정에 AI 기술을 적용해 완성한 영화가 바로 'AI 수로부인'이다. 한국의 나라AI필름이 2023년에 선보인 이 작품은 시나리오 작성부터 영상 편집, 자막 제작까지 약 50여 개의 AI 도구를 활용하여 만들어졌다. 또 다른 흥미로운 사례로는 'What's Next?'가 있다. 중국 감독 Cao Yiwen은 Runway, Discord 등 다양한 AI 플랫폼을 활용해 72분 분량의 영화를 제작했으며, 이 작품은 2025년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소개되어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았다.
조금 더 과거로 돌아가 보면, AI가 각본을 작성한 단편 영화 'Sunspring'도 있다. 2016년에 제작된 이 작품은 AI 'Benjamin'이 쓴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인간 배우들이 연기를 펼쳤다. 이처럼 AI는 이미 영화 제작의 다양한 영역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으며, 실험적 시도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AI 영화 제작이 던지는 윤리적 질문
AI가 영화 제작에 참여하는 것이 기술적 쾌거인 것은 분명하지만, 동시에 윤리적이고 법적인 문제를 피할 수는 없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쟁점은 저작권 문제다. AI가 생성한 시나리오나 영상은 누구의 소유물인가? 기존 저작권법은 인간 창작자를 전제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AI 창작물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부재한 상황이다.
또한 창작의 의미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도 필요하다. 인간이 경험과 감정을 바탕으로 빚어낸 예술과, 데이터를 분석해 만들어낸 AI의 결과물은 과연 동일 선상에 놓을 수 있을까? 영화란 단순히 스토리와 영상의 조합이 아니라, 인간의 감정선과 시대적 맥락을 담아내는 예술이라는 점에서, AI 영화는 새로운 기준을 요구하고 있다.
AI와 인간, 새로운 창작 파트너십의 가능성
그렇다고 해서 AI를 예술의 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오히려 AI는 창작자에게 새로운 도구이자 영감을 주는 파트너가 될 수 있다. 인간이 상상하지 못했던 구조의 스토리라인을 제안하거나, 반복적이고 시간 소모적인 작업을 대신함으로써 창작자가 본연의 감성에 더욱 집중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
실제로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영화 'The Irishman'에서는 AI 기술을 활용해 배우들의 젊은 시절을 자연스럽게 재현했고, 마블 스튜디오 또한 AI 기반 기술을 적극 도입해 특수효과의 퀄리티를 높였다. 이처럼 AI는 이미 인간 창작자의 손길을 더욱 빛나게 하는 조력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앞으로의 관건은 기술을 무조건 수용하거나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창의성과 윤리성을 균형 있게 조율하며 AI와 함께할 것인가에 있다. 관객 역시 이 변화를 두려워하기보다는 새로운 예술 형태의 탄생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결국, AI가 만든 영화가 예술이 될지, 단순한 도구에 그칠지는 인간의 선택에 달려 있다. 기술은 이미 우리 곁에 와 있으며, 이제 우리가 그 기술을 어떻게 '함께' 사용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