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U의 음악, 왜 ‘기억에 안 남는다’는 말이 나올까?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는 지난 15년간 수많은 히어로 영화로 세계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캐릭터, 스토리, 액션 연출 등 다방면에서 찬사를 받아왔지만, 의외로 자주 등장하는 비판이 하나 있다. 바로 “MCU의 음악은 기억에 남지 않는다”는 말이다. 수십 편의 영화가 나왔지만, 관객들이 떠올릴 수 있는 테마 음악은 대부분 ‘어벤져스 테마’ 하나 정도다. 과연 왜 이런 현상이 벌어졌을까?
먼저 이 문제는 단순히 작곡 퀄리티의 문제가 아니다. MCU는 앨런 실베스트리, 마이클 지아치노, 루드윅 고란손 등 할리우드 정상급 작곡가들과 협업해왔다. 이들의 음악은 기술적으로 완성도가 높고, 오케스트레이션도 풍부하다. 하지만 그 음악이 영화와 완전히 결합되지 못하고 ‘배경음’으로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감정을 건드리는 테마의 부재
영화 음악이 기억에 남는 가장 큰 이유는 감정의 절정 순간에 음악이 함께 존재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 나이트’ 시리즈에서 한스 짐머가 만든 조커 테마는 캐릭터의 불안과 긴장을 음악으로 표현하며 강한 인상을 남겼다. 반면, MCU는 액션 시퀀스 중심의 구성이 많고, 캐릭터의 내면 변화나 감정선이 음악적으로 깊이 표현되는 장면은 드물다.
가장 유명한 ‘어벤져스 테마’조차 특정 캐릭터의 테마가 아닌, 단체의 등장 순간을 위한 신호음에 가깝다. 개별 캐릭터가 자신의 감정을 드러낼 때마다 반복되는 고유 테마가 거의 없다는 점이 MCU 음악의 가장 큰 약점으로 꼽힌다. 이는 음악을 ‘장식’으로만 사용하는 영화적 태도에서 비롯된 구조적 문제다.
감정보다 기능이 앞선 음악
MCU의 영화들은 대체로 빠른 전개, 다수의 인물, 멀티 시점의 액션을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음악이 감정보다 기능을 담당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각 장면을 연결하고, 분위기를 조절하는 데는 효과적이지만, 특정 테마가 반복되며 관객의 기억 속에 자리 잡을 시간을 빼앗는다.
반면 경쟁작인 DC 영화들은 음악에 훨씬 감정적 투자를 한다. 예를 들어, 잭 스나이더 버전의 ‘저스티스 리그’에서는 원더우먼이 등장할 때마다 일정한 보컬 테마가 반복되며 강한 존재감을 부여한다. 관객은 그 음악만 들어도 캐릭터를 떠올리게 된다. 마블은 여전히 특정 캐릭터에 고유 음악을 정착시키는 데 소극적이다.
최근 변화의 가능성
하지만 최근 들어 MCU 내에서도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블랙 팬서’ 시리즈의 경우, 루드윅 고란손의 음악이 아프리카 전통 악기와 현대적인 텍스처를 결합해 독창적인 사운드를 만들어냈고, 이는 영화의 정체성과 감정을 동시에 담아냈다는 평을 받았다. 또한 ‘로키’ 시리즈에서는 전자음과 오케스트라를 혼합한 테마가 주인공의 복잡한 성격을 표현하는 데 성공했다.
이러한 사례들은 음악이 단순한 배경을 넘어, 서사의 일부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시도다. MCU가 향후 더 많은 캐릭터 중심의 음악을 정착시킬 수 있다면, 지금까지의 평가는 점차 달라질 수 있다.
관객이 원하는 건 테마 자체가 아니라 기억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단순히 멋진 멜로디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스토리와 감정, 캐릭터의 정체성과 맞닿은 음악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관객이 기억하는 음악은 특정 장면의 감정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도구다. MCU는 이제 수십 명의 히어로를 보유한 거대한 유니버스가 되었지만, 그 수많은 인물에게 들려줄 단 하나의 음악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향후 마블이 음악의 기능을 넘어서, 감정과 기억의 매개로 활용하게 된다면, MCU 사운드트랙에 대한 평가는 달라질 수 있다. 관객은 스토리를 기억하기 위해, 때로는 음악을 먼저 기억하곤 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어벤져스 테마를 아직도 떠올릴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