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R 수업, 게임처럼 재밌기만 하면 진짜 공부가 될까?
요즘 학생들은 전통적인 수업 방식보다 훨씬 더 빠르게 새로운 기술에 반응한다. 특히 VR(가상현실) 수업은 교실 분위기를 단번에 바꿔놓을 정도로 강한 몰입감을 유도한다. 그런데 이처럼 흥미롭고 역동적인 수업 방식이 과연 학습 효과로도 이어질까? 단순히 재미만 추구한 수업이 진짜 교육이 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은 교육자로서 한 번쯤 진지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질문이다.
내가 처음 VR 기반 수업을 도입했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 중 하나는 “우와, 게임하는 것 같아요!”라는 반응이었다. 학생들은 기기를 착용하는 순간 눈빛이 달라지고, 무대 위에 선 듯한 몰입감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수업이 끝나고 나서 돌아보면, 과연 그들이 무엇을 ‘배웠는가’라는 질문에는 선뜻 답하기 어려울 때도 있었다. 너무 강렬해서 일까? 생각보다 학습적인 측면이 부각되지 않고, 가상의 체험에만 국한되어서 아이들 머릿속에 학습적인 내용이 언급되지 않는 현상을 종종 보았다.
재미와 학습은 반드시 연결되지 않는다
교육심리학에서는 학습을 유도하는 자극으로서 ‘재미’가 일정 역할을 한다고 본다. 하지만 그 재미가 ‘몰입의 도입부’로 작용하지 않고, 끝까지 표면적인 자극으로만 남아있을 경우, 오히려 학습의 구조를 흐릴 수 있다. 특히 VR 수업처럼 시각과 청각을 동시에 자극하는 콘텐츠는 설계가 섬세하지 않으면 학습자들이 ‘정보’보다 ‘자극’에 더 끌릴 수 있다.
실제로 내가 수업에서 오페라를 VR로 감상하게 했을 때, 학생들은 장면의 화려함과 배경의 움직임에는 열광했지만, 정작 음악의 구조나 감정 표현에 대해서는 깊이 있는 반응을 보이지 못한 경우가 있었다. 그날 나는 확실히 느꼈다. 기기만 준비한다고 몰입이 되는 게 아니라, 그 몰입이 ‘교육적인 사고’로 이어지도록 안내하는 구조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정말 뼈저리게 느꼈다. 확실하게 학습의 구조를 만드는 것이 필요했다.
재밌는 수업을 넘어 ‘생각하는 수업’으로
VR 콘텐츠는 대부분 게임 구조에서 차용된 방식이 많다. 1인칭 시점, 시퀀스 기반의 장면 구성, 미션 수행형 몰입 방식 등은 기본적으로 '체험'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하지만 교육은 체험 그 자체보다도, 그 체험을 통해 ‘무엇을 이해하고 어떤 사고를 하게 되었는가’에 더 가치를 둔다. 그렇기 때문에 VR 수업은 단지 체험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그 체험을 기반으로 한 해석과 토론, 기록이 병행되어야 한다.
내 경우에는 VR 콘텐츠 이후에 포트폴리오 활동을 필수로 넣었다. 학생들이 느낀 감정, 관찰한 요소, 기억에 남은 장면을 자유롭게 서술하게 한 뒤, 음악 분석이나 감정선 해석 같은 요소를 함께 정리하게 했다. 그 과정을 거치면서 비로소 학생들의 ‘몰입’이 ‘생각’으로 전환되는 흐름이 생겼고, 수업의 목표가 다시 살아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교사로서의 설계가 없으면, VR 수업은 일회성 체험으로 끝나기 쉽다. 어떤 학생은 수업이 끝난 뒤 “이거 진짜 재밌어요! 또 해요!”라고 말했지만, 그 말 뒤에 “근데 뭘 배운 건지는 잘 모르겠어요…”라는 웃음 섞인 덧붙임이 함께 나왔다. 그 말은 지금도 내 수업 설계의 기준점이 되고 있다.
기술보다 중요한 건 설계와 흐름
VR 수업은 ‘신기한 기술’을 보여주는 데서 끝나서는 안 된다. 교육자 입장에서 가장 먼저 고민해야 할 것은 “학생들이 이 수업을 통해 어떤 질문을 품게 될까”이다. 질문이 없는 체험은 단지 체험일 뿐이고, 학습은 일어나지 않는다. 기술이 수업의 앞에 서면 그 수업은 쇼처럼 보일 수 있다. 기술은 어디까지나 수업의 뒤에 서서 흐름을 보조하는 역할이어야 한다.
나는 이후부터 수업 흐름을 먼저 설계하고, VR 체험은 수업 중반부나 후반부에 위치시키는 방식을 택했다. 그렇게 하니 학생들이 VR 체험을 단지 재미로만 받아들이지 않고, 수업 내용의 연장선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학습이라는 흐름 안에서 기술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었을 때, 비로소 VR 수업은 진짜 교육의 모습에 가까워질 수 있다.
VR 수업이 효과적이 되기 위해서는 기술 자체보다 수업 흐름, 사전 안내, 사후 활동까지 연결된 설계가 전제되어야 한다. 재미만 있는 수업은 분명 학생들의 관심을 끌 수 있지만, 그 재미가 사라졌을 때 무엇이 남는지를 묻는다면, 결국 교육의 본질은 ‘생각하게 하는 구조’에 있다는 걸 다시 한 번 떠올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