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R 수업, 결국 교사를 더 필요하게 만든다
VR 수업이 본격적으로 교실에 도입되기 시작했을 때, 종종 이런 말을 들었다. “이젠 교사 없이도 수업이 가능하겠네요.” 가상현실이라는 이름처럼, 교실을 대체할 수 있는 다른 공간이 생겼고, 콘텐츠는 교사 없이도 알아서 학생들에게 정보를 제공했다. 하지만 실제로 그 수업을 운영해본 뒤 나는 확신하게 되었다. VR 수업은 교사를 더 필요하게 만든다. 단지 안내자가 아니라, 수업의 방향을 설계하고 감정의 흐름을 조율하며, 학습의 본질을 붙잡아주는 ‘중심축’으로서의 교사를 말이다.
기술이 주는 몰입은 강력하다. 눈앞에 펼쳐진 오페라 무대, 우주 공간, 역사적 사건의 한가운데. 학생들은 마치 그 자리에 있는 듯한 감각을 느낀다. 하지만 그 몰입이 학습이 되기 위해서는 ‘해석’이 필요하다. 바로 그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사람이 교사다.
콘텐츠가 아닌 맥락을 만드는 사람
VR 콘텐츠는 대부분 시청각 중심으로 구성된다. 정교한 시각 정보, 풍부한 음향, 상호작용 요소까지 갖춘 콘텐츠는 스스로 완결된 구조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학생들에게는 여전히 질문이 필요하다. 이 장면에서 주인공은 왜 저런 행동을 했을까? 내가 그 인물이었다면 어떤 기분이었을까? 그 질문은 단지 기능적 해석이 아니라 감정과 맥락의 연결을 유도한다. 그리고 그 연결은 교사가 만든다.
나는 수업 전 항상 ‘질문 하나’를 준비한다.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학생의 사고를 유도할 수 있는 질문이다. “너는 이 장면을 어떻게 들었니?” 또는 “이 장면이 너에게 무엇을 떠오르게 했니?” 같은 물음은, 콘텐츠를 넘어서 ‘생각하는 시간’을 만든다. 기술은 정보를 제공하지만, 그 정보를 통해 무엇을 느끼고 이해할지는 교사의 질문에서 시작된다.
수업 설계자는 여전히 교사다
VR 수업이 교사를 대신할 수 있다는 생각은, 수업을 콘텐츠 재생으로만 보는 관점에서 나온다. 하지만 실제 수업은 훨씬 더 복잡한 흐름으로 이루어진다. 어떤 시점에서 콘텐츠를 끊을지, 어떤 반응을 기다릴지, 어떤 피드백을 어떻게 연결할지는 교사의 설계 능력에 달려 있다. 특히 감정적 몰입이 강한 콘텐츠일수록, 그 흐름을 조절하고 정리해주는 역할은 더 중요해진다.
한 번은 VR 수업 도중 한 학생이 체험 후 갑자기 울음을 터뜨린 적이 있었다. 장면 속 인물과 자신의 감정이 겹쳐지며 깊은 몰입이 일어난 결과였다. 그때 나는 수업 흐름을 멈추고, 말없이 조용히 기다려주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뒤, 아이는 조용히 자기의 감정을 글로 풀어냈다. 그 장면을 보며 확신했다. 콘텐츠가 아니라, 그 콘텐츠 이후의 시간과 감정을 설계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그 역할은 여전히 교사가 해야할 일이고, 교사만 가능한 일이었다.
기술이 많을수록 교사의 감각이 더 중요해진다
아이러니하게도, 기술이 강력해질수록 교사의 역할은 더 섬세해져야 한다. 이전보다 더 민감하게 학생의 반응을 읽고, 콘텐츠의 맥락을 해석하며, 수업 전체의 리듬을 조율해야 한다.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시대를 넘어, 지금은 ‘수업을 설계하고 관계를 형성하는’ 교사가 필요한 시대다.
학생은 기술에 압도되기 쉽다. 특히 시각과 청각을 동시에 자극하는 VR은 학생의 감각을 순식간에 포획한다. 그 포획이 학습으로 전환되기 위해선 교사의 개입이 반드시 필요하다. 나는 종종 수업 중에 VR 기기를 벗게 하고, 잠깐 눈을 감고 장면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그 작은 멈춤이 기술 중심 수업을 인간 중심 수업으로 바꾸는 전환점이 된다.
기술은 점점 더 똑똑해진다. 하지만 교사는 점점 더 ‘사람을 바라보는 감각’을 훈련해야 한다. 그 감각이야말로, 기술로는 대체할 수 없는 교육의 중심이다. VR 수업이 교사를 더 필요하게 만든다는 말은, 바로 그 감각이 있어야 수업이 완성된다는 의미다.
교육은 여전히 사람의 일이다. 기술이 도와줄 수는 있지만, 그 중심에 서 있는 사람 없이는 방향을 잃는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사람은 언제나 교사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