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VR 수업, 음악이 국어가 되고 미술이 되는 순간

by 신리뷰 2025. 6. 10.

VR수업의 한계는 없다

VR 수업, 음악이 국어가 되고 미술이 되는 순간

 VR이 교실에 들어오면서 가장 먼저 주목받은 건 그 몰입감이다. 눈앞에 펼쳐진 무대, 현실감 넘치는 움직임, 그리고 그 안에 들어간 듯한 착각. 하지만 그보다 더 흥미로운 지점은, 한 번의 VR 체험이 여러 교과에 걸쳐 확장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었다. 교과 간 융합 수업. 말은 자주 등장했지만 실제 교실에서는 쉽지 않은 시도였다. 그런데 VR은 그 경계를 조금씩 허물고 있었다.

 내가 처음 융합 수업을 고민하게 된 계기는 음악 수업에서였다. 오페라 ‘마술피리’의 한 장면을 VR로 체험하게 한 뒤, 학생들과 감상 소감을 나누던 중 한 학생이 이렇게 말했다. “이건 그냥 노래가 아니라 이야기 같아요.” 그 한마디에서 시작되었다. 감정과 스토리, 장면의 시각적 구성, 음악의 흐름이 하나로 얽힌 이 콘텐츠는 음악 수업이면서 동시에 문학 수업이었고, 시각예술을 해석하는 미술 수업이기도 했다.

하나의 경험, 세 개의 시선

 VR 콘텐츠는 교과의 구분 없이 경험을 던져준다. 예를 들어 ‘밤의 여왕 아리아’ VR 공연을 감상하면, 학생들은 우선 음악적인 요소선율과 음색, 리듬에 집중하게 된다. 하지만 동시에 그 무대의 조명과 배경, 의상과 움직임을 통해 시각적 자극을 받는다. 그리고 극 안에서 인물의 대사를 듣고 감정을 추론하는 과정은 문학적 해석으로 이어진다.

 나는 이 수업을 세 단계로 나누어 확장해보았다. 첫째, 음악 수업 시간에는 성부별 분석과 감정선 파악을 중심으로 VR 콘텐츠를 해석했다. 둘째, 미술 시간에는 무대 디자인 요소를 중심으로 각 장면의 색감, 구조, 연출을 분석하게 했다. 셋째, 국어 시간에는 등장인물의 내면을 독백 형식으로 다시 써보게 했다. 같은 콘텐츠였지만, 각 수업에서 학생들은 서로 다른 감각과 언어로 경험을 다시 해석해냈다. 처음엔 다소 낯설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학생들이 각자의 강점에 따라 자유롭게 표현하는 방식으로 발전되었다. 아무래도 VR수업은 각자가 느끼는 체험이 다르기 때문에 학생들의 의견과 생각도 다른 것이라 생각한다.

 그때 느꼈다. VR이 주는 진짜 힘은 체험 자체보다, 그 체험을 중심으로 얼마나 다양한 교과적 시선을 덧붙일 수 있는가에 있다는 것을.

융합 수업을 위한 전제 조건

 물론 VR이 있다고 해서 자동으로 융합 수업이 되는 건 아니다. 오히려 VR은 수업 설계를 더 복잡하게 만들 수도 있다. 단일 교과에서 벗어날수록 수업의 목적이 흐려질 수 있고, 콘텐츠 자체가 모든 교과에 적합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항상 융합 수업을 계획할 때 ‘하나의 질문’을 중심에 두었다. “이 체험은 학생에게 어떤 물음을 남기는가?”

 음악으로 들었던 장면이 감정적으로 낯설게 다가왔을 때, 학생은 ‘왜 저 인물은 그런 노래를 불렀을까?’라는 질문을 갖는다. 그 질문은 문학적 탐구로 이어질 수 있다. 또는 ‘이 장면은 왜 파란 조명으로 구성되었을까?’라는 시각적 요소는 미술 시간의 분석 주제가 된다. 하나의 질문이 교과 간 연결의 실마리가 되는 것이다.

 또한 교사 간 협력도 중요하다. 나는 미술 교사, 국어 교사와 사전에 수업 흐름을 공유하고, 어떤 부분에서 어떤 언어로 학생들의 표현을 유도할지 논의했다. 그 결과 각 교과 수업이 하나의 흐름처럼 이어졌고, 학생들은 그 연결성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되었다.

교실이 더 입체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VR을 활용한 융합 수업이 반복될수록, 교실 안에서 학생들의 움직임도 달라졌다. 감상 중심의 수업에서는 조용히 앉아있던 학생이, 미술 시간에선 가장 먼저 손을 들고 의견을 말했고, 국어 시간에는 상상 속 대사를 적어내며 등장인물의 시선을 빌려 자신의 감정을 표현했다. 한 가지 콘텐츠를 각기 다른 교과의 렌즈로 들여다보는 작업은, 결국 학생의 사고 구조를 더 유연하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의미 있었던 건, 학생들이 이제 수업을 '교과' 단위로 구분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수업 시간에 “이거 국어에서도 해봤는데요” 혹은 “이 장면, 미술 시간에 색감 배운 거랑 비슷해요”라는 연결을 스스로 만들기 시작했다. 그건 단지 융합 수업이 잘 설계됐다는 차원을 넘어서, 학생 스스로 교과 간의 맥락을 꿰고 있다는 증거였다. 놀라운 학습효과와 내가 바라던 학습 구조였다.

 VR 수업은 이제 단일 과목의 특별한 수업이 아니다. 그것은 교실 전체의 흐름을 바꾸는 도구가 될 수 있다. 기술은 그 자체로 완성되지 않는다. 경험을 어떻게 설계하고, 해석하고, 연결하느냐는 결국 교사의 손에 달려 있다. 교과를 넘나드는 그 움직임은, 질문에서 시작되어 해석으로 이어지고, 결국 표현으로 마무리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언제나 학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