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R 수업 이후, 교실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변화의 순간들
처음 VR 수업을 도입할 때만 해도 나는 단순히 하나의 수업 도구를 추가한다는 마음이었다. 학생들이 지루할 수 있는 일반적인 수업 시간에 흥미를 끌 수 있는 수단정도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몇 차례 수업을 반복하고 나니, 예상보다 더 깊은 변화들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변화는 단순히 기기를 착용하고 있는 동안의 모습만이 아니라, 수업 전후의 태도, 학습에 대한 감각, 교실의 공기 자체에서 감지되었다.
나는 음악 수업에서 VR을 활용해 오페라 무대나 클래식 공연을 체험하도록 구성했다. 처음엔 모두가 조용히 앉아 기기를 낯설게 만지작거렸고, 한두 번 체험을 마친 뒤부터는 눈빛이 달라졌다. 수업 시간에 주로 묵묵히 듣기만 하던 학생들이, 체험 후에는 먼저 손을 들고 질문을 하거나 “그 장면에서 왜 저런 표정을 했을까” 같은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참여의 방식이 달라졌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수업에 참여하는 방식이었다. 기존에는 교사가 이끄는 흐름 속에서 수동적으로 반응하던 학생들이, VR을 경험한 이후부터는 각자의 관점으로 내용을 해석하고 표현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그 변화는 아주 작고 자연스러웠지만, 분명하게 느껴졌다.
특히 기억에 남는 장면은 한 학생이 체험 후 포트폴리오에 적은 글이었다. “저는 그 무대에 제가 진짜 있었던 것 같았어요. 그래서 그 여왕이 왜 그렇게 부르짖었는지도 조금은 알 것 같았어요.” 단순한 감상이 아닌, 장면 속 인물의 감정을 자기 감각으로 이해하려는 시도였다. 이전 수업이라면 나오기 어려웠던 문장이었다. 이런 대답을 처음 받았을 때, 나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참여는 발표나 활동의 양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자기 시선으로 느끼고, 그 감정을 언어화하고, 그 언어를 통해 다시 타인의 생각을 이해하려는 움직임이 만들어질 때, 참여는 단순한 반응을 넘어선다. VR 수업은 그러한 흐름의 도화선이 되었다.
교사의 역할도 바뀌었다
기기를 배치하고, 콘텐츠를 실행하고, 학생들의 안전을 챙기느라 분주한 초반이 지나자, 나는 한 가지를 자주 자문하게 되었다. 이 수업을 왜 하는가? 그리고 나는 무엇을 이끌어야 하는가? VR이라는 새로운 매체 앞에서 교사는 그저 안내자가 아닌, ‘맥락을 구성하는 설계자’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체감하게 되었다.
콘텐츠는 학생들을 어디론가 데려간다. 하지만 그 목적지가 수업의 목표와 연결되지 않는다면, 그 체험은 그냥 지나가는 풍경이 되고 만다. 나는 수업 전, 후에 질문을 붙이기 시작했다. “당신이 그 장면의 인물이었다면 어떤 기분이었을까?” 또는 “다시 본다면 어떤 점을 더 보고 싶었나?”처럼, 체험을 되새기고 사고로 연결하는 질문이었다. 그 순간, 교사는 ‘VR을 보여주는 사람’이 아니라, 학생뿐만 아니라 그 경험을 통해 무엇을 보게 될지 함께 고민할 수 있는 교수자가 되는 것이다.
기술이 교사를 대체할 수 없다는 말은 이럴 때 진짜 실감된다. 오히려 기술이 들어올수록 교사의 시선과 설계, 맥락화 능력은 더 중요해졌다.
교실이 품는 분위기가 달라졌다
이런 수업이 반복되자, 교실 자체의 분위기도 조금씩 달라졌다. 단순히 말수가 늘어난 것 이상의 변화였다. 학생들 사이에서 서로의 체험을 묻고, 비교하고, 표현하려는 시도가 많아졌다. 어떤 장면이 인상 깊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며 웃기도 하고, 때로는 감정을 정리하지 못해 한참을 조용히 앉아 있던 학생도 있었다.
나는 그런 시간을 일부러 기다렸다. 감상과 표현 사이에는 시간 차가 존재한다. VR 수업은 그 ‘생각의 시간’을 만들어주는 도구였고, 교실은 점점 더 ‘각자의 감각이 말이 되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과제 제출보다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더 길어졌고, 나는 그 흐름을 존중하기로 했다. 예전 같았으면 시간을 재정비하여 수업을 빠르게 정리하려고 했겠지만, 지금은 그 여운이 교육의 일부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VR 수업은 결국 기술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학생들의 내면을 건드릴 수 있는 통로였고, 교사가 무엇을 바라보는가에 따라 교실의 공기가 달라지는 기회였다. 중요한 것은 그 기회를 어떻게 설계하고, 어떻게 기다려주는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