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R 수업 한 번이 교무실을 바꿔놓았습니다
VR 수업을 준비하면서, 나는 그 변화가 교실 안에서만 일어날 줄 알았다. 학생들의 반응, 몰입도, 감정 표현 등 수업 분위기가 달라질 것이라는 기대는 있었지만, 그 수업이 교무실까지 바꿔놓을 줄은 미처 몰랐다. 그러나 실제로는 수업보다 더 뚜렷한 변화가, 교사들 사이에서 먼저 일어났다. 수업 하나가 어떻게 교사의 말투를, 질문을, 태도를 바꿔놓았는지 그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수업이 아닌 ‘수업 이야기’가 시작되다
VR 수업이 끝난 날, 나는 수업 후기를 기록하려고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옆자리 선생님이 먼저 말을 걸었다. “학생들 반응 어땠어요?” 질문 하나가 시작이었다. 그날 이후, 수업이 끝날 때마다 교무실에는 그날의 반응, 장면, 학생의 말, 교사의 고민이 오고 갔다. 이전까지는 학사 일정이나 행정 업무가 대화의 대부분이었다면, 그 이후엔 “그 장면에서 학생이 이렇게 반응했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같은 말이 자연스럽게 오갔다.
교육부의 '디지털기반 미래교육 종합계획' 보고서에서도 언급된 바 있듯이, 몰입형 수업은 교사 간 협업을 자극하는 효과가 있다. VR이나 AI 수업은 기술 자체보다, 그것을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고민이 중심이기 때문에, 교사들이 서로의 설계 방식을 공유하게 된다. 그리고 그 공유는 단순한 아이디어 전달을 넘어, 수업 철학과 관점을 나누는 과정이 된다.
기술이 아니라 경험이 대화를 만든다
한 번은 다른 과목 선생님이 수업 영상을 요청해왔다. “이거, 우리 과에도 적용하면 좋을 것 같아요.” 그렇게 시작된 대화는 과목 간 협업으로 이어졌다. 역사 수업에서는 그 시대의 공간을 VR로 체험하고, 음악 수업에서는 그 시대 음악을 함께 듣는 방식으로 공동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단 한 번의 VR 수업이, 교과 경계를 허물고 ‘수업을 함께 만들자’는 분위기를 만들어낸 것이다.
한국교육개발원의 2023 연구에 따르면, 몰입형 콘텐츠를 활용한 수업을 운영한 교사들의 68%가 “동료 교사와의 협력 빈도가 증가했다”고 응답했다. 기술이 단순히 수업 방식의 변화만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교사 간 협업 문화에도 영향을 준다는 점은 매우 주목할 만하다.
교사의 질문이 바뀌는 순간
무엇보다 달라진 것은 교사들의 질문 방식이었다. 예전에는 “수업 내용 어떻게 채우셨어요?”였던 질문이, 이제는 “학생이 어떤 반응 보였나요?”, “그 장면에서 무슨 대화를 나눴어요?”로 바뀌었다. 학생의 내면, 감정, 반응에 대한 관심이 기술을 통해 드러난 것이다. VR이라는 매개는 기술이었지만, 그 기술이 끌어낸 것은 결국 ‘학생에 대한 더 깊은 질문’이었다.
그 변화는 수업을 설계하는 교사 자신의 정체감에도 영향을 미쳤다. 더 이상 수업은 ‘지식을 전달하는 구조’가 아니라, ‘경험을 설계하는 과정’이라는 인식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수업의 성공은 콘텐츠의 완성도가 아니라, 학생의 반응과 질문에서 드러나는 것이란 생각이 퍼져나갔다.
학교 전체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한다
몰입형 수업 이후, 우리 학교에는 작은 변화들이 생겼다. 교무회의 안건으로 ‘융합 수업 사례 공유’가 올라왔고, 연수 주제가 ‘경험 중심 수업 설계’로 바뀌었다. 정기 협의회 때는 교과 간 연결 가능성을 탐색하는 시간도 마련되었다. 수업 하나가 문화를 만들고, 그 문화가 학교를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교육부에서도 에듀테크 기반 혁신의 핵심을 ‘학교 자율성과 교사 중심 설계’로 강조하고 있다. 단지 기술을 배치하는 것이 아니라, 교사들의 주체적인 설계와 해석이 있을 때 비로소 학교 문화가 바뀔 수 있다는 점이다.
결국, 교실의 변화는 교무실에서 완성된다. 그리고 그 교무실의 대화가 바뀌었을 때, 우리는 진짜 변화가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기술은 자극이지만, 변화는 결국 사람이 만든다. 수업 하나가 학교를 바꿨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그 수업이 교사들 사이의 신뢰와 대화, 협업의 문을 열었기 때문이다.